국립대 한의과 신설, 졸속 시비·특혜 논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7면

국립대 한곳에 한의학과를 신설한다는 보건복지부와 교육인적자원부의 결정(본지 10월 8일자 30면)을 둘러싸고 졸속 시비 등의 잡음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 10년간 유지돼온 '한의학과 정원 동결' 방침이 돌연 바뀌었고, 그것도 교육부의 내년도 대학별 정원조정 신청이 마감(5월)된 뒤 뒤늦게 급작스레 이뤄진 데 따른 것이다.

상당수 대학은 학과 신설 신청기간 이 20일에 불과해 미처 준비를 못한 상태에서 신청이 마감됐다며 반발하고 있으며, 일각에서는 복지부의 특정대학 밀어주기라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 급작스러운 방침 선회=복지부는 1991년부터 '보건의료인력 입학정원 정책방향'을 통해 의료인력 공급 과잉을 막기 위해 한의학과 증원이 불필요하다는 입장을 취해왔다.

교육부는 지난 3월에도 복지부의 이 방침을 재확인, 각 대학에 2002 학생정원 조정계획 공문을 보내면서 '의학 관련 정원 현행수준 유지' 원칙과 함께 '신.증설 신청 무의미'라고 못박았다.

그럼에도 5월 10일 정원신청 마감 결과, K대와 S대 등 두 국립대가 한의학과 신설을 신청했다.

그러나 복지부는 3개월여 후인 지난 8월 22일 입장을 바꿔 '세계 최고의 한의과대학 설치.육성 차원에서 국립대학 1개교에 입학정원 40명 규모의 한의대 설치를 검토할 수 있다'고 교육부에 통보했다.

이에 따라 교육부는 9월 6일 각 국립대에 공문을 보내 9월 25일까지 한의대 설립을 신청하라는 공문을 하달, 7개대가 추가로 신청을 했다.

◇ 의혹.반발=복지부는 8월 공문을 교육부에 보내며 '신청서를 낸 두 국립대 중 ▶교수요원 확보가 쉽고▶지역여건이 좋으며▶병원시설이 가능한 건물(옛 결핵병원)을 확보한 K대가 좋은 것 같다'는 의견을 교육부에 낸 것으로 17일 확인됐다.

이와 관련, 한의학계에서는 지난 7월부터 "모 대학이 복지부 고위관료의 특강을 유치하고 국회 교육위원에게 명예박사학위를 주는 로비를 통해 한의학과 설치를 보장받았다"는 루머가 돌기도 했다.

교육부의 한 관계자는 "복지부가 갑작스레 의견을 바꾸는 바람에 부랴부랴 신청을 받았다"며 "복지부가 특정 대학에 대한 선호 의견을 낸 것은 월권행위"라고 지적했다.

대학측의 반발도 잇따른다. 충남대 한 간부는 "학교발전을 위해 한의학과를 설치하고 싶었지만 그동안 계속 신설을 묶어둬 준비를 하지 못한 상태였다"며 "뒤늦게 신청을 받기로 하는 바람에 기간이 너무 촉박해 결국 신청을 못하고 말았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이 관계자는 "한해 미뤄 국립대에 한의학과를 설치해도 될 일인데 그렇게 무리하게 처리한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복지부는 "국립대에 한의학과를 설립해달라는 한의학계의 의견을 받아 설립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을 뿐"이라며 "특정 대학에 대해 선호의견을 밝힌 것도 한의학 발전을 위해 종합적인 견해를 밝힌 것"이라고 말했다.

성호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