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파노라마] 정신장애인들 고구마 재배 첫 수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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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와, 이 고구마 정말 크다!" "벌써 네가마나 찼어요."

17일 오전 서울 도봉구 쌍문1동 근린공원 내 '푸른 도봉'텃밭. 봄부터 가꿔온 고구마를 수확하는 이날, 1백평 남짓한 텃밭엔 가을하늘만큼이나 맑은 웃음이 넘쳐났다.

매주 한 차례씩 텃밭을 찾아 흙을 고르고 거름을 주며 고구마가 잘 자라기만을 마음 졸여 빌어온 이들은 도봉구 보건소에서 정신재활 사회적응 훈련을 받고 있는 40여명의 정신 장애인들. 17세 청소년에서 65세 노인까지 다양하다.

이들은 지난 3월 비료를 주어 텃밭을 비옥하게 한 뒤 고구마순 1천6백 포기를 골고루 심었다.

틈나는 대로 텃밭을 찾아 잡초를 뽑고 너무 자란 순은 뜯는 등 정성을 쏟았다. 정신장애를 앓고 있어 증세가 악화되면 입원 치료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어려움은 말할 수 없었다.

지난 여름 집중 호우 때 농작물이 떠내려 갈까봐 혼자 텃밭에 나와 밤새 물꼬를 터주고 배수로를 정비한 이도 있었다.

이들의 땀방울이 밑거름이 됐는지 고구마는 어른 주먹 두 개나 될 정도로 잘 자랐다. 이날 오전 1차로 벌인 작업에서만 10여가마를 수확했다. 자신보다 어려운 이웃을 돕겠다는 마음에서 더욱 힘을 들인 고구마들이었다.

이들은 고구마를 20㎏씩 나눠 거동이 불편해 누워 생활해야 하는 지체장애인이나 독거노인 10여명에게 전달했다.

"사회와 가정에서 외면받기 쉬운 정신장애를 앓고 있어 텃밭에 나가 농작물을 돌보는 것 자체가 즐거운 일이었죠. 항상 도움을 받아야 하는 우리도 남을 위해 살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돼 기쁩니다."

교통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된 崔모(24.도봉구 쌍문동)씨의 집을 방문해 고구마를 전달한 申모(36)씨의 소감이다.

도봉구 보건소는 매주 금요일 관내 정신장애인들을 모아 생활훈련.상담.음악치료.레크리에이션 등의 활동을 펼치며 1999년부터 텃밭을 제공,고추.벼 등을 가꾸도록 하고 있다.

보건소 지역보건과 백경애 과장은 "농작물을 재배하는 과정은 장애인들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줘 사회 적응 효과가 뛰어나다"며 "이들이 텃밭을 일구며 보여준 의지는 놀라웠다"고 말했다.

김성탁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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