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 찔린 한국 … 공들였던 한·중 전략적 동반관계 무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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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인택 통일부 장관(오른쪽)이 4일 취임 인사를 하기 위해 서울 세종로 정부 중앙청사를 방문한 장신썬 주한 중국대사 를 접견하고 있다. 현 장관은 “중국 정부의 책임 있는 역할이 어느 때보다 요구되고, 기대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전격 방중으로 허를 찔린 정부와 여권이 중국에 ‘책임 있는 자세’를 촉구하며 외교전에 돌입했다. 신각수 외교통상부 1차관은 3일 장신썬 중국 대사를 초치해 김 위원장 방중에 대한 우리 정부의 관심과 입장을 전달했다. “(천안함 사태로) 엄중한 시점에서 김 위원장의 방중이 적절한지 생각하게 된다”는 언급이었다고 한다. 정부가 특정 현안을 놓고 중국 대사를 불러들인 것은 전례가 드문 일이다. 현인택 통일부 장관도 4일 자신을 예방한 장 대사에게 “한반도 정세가 매우 어렵고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는데, 중국의 책임 있는 역할이 어느 때보다 요구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앞서 한나라당 정몽준 대표도 3일 “천안함 사태 와중에 중국이 김 위원장의 방문을 받아들인 데 대해 실망 스럽다”고 비판했다. 박진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위원장도 4일(한국시간) 워싱턴에서 “중국은 (김 위원장 방중을 통해) 북한에 잘못된 메시지를 보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허 찔린 정부=지난달 30일 이명박 대통령이 상하이에서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 천안함 사태에 대한 협조를 요청한 지 사흘 만에 중국은 사전 통보 없이 김정일의 방중을 받아들였다. 이명박 정부 2년 동안 한국은 대중 관계를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하고 양국관계 심화에 힘써왔다.

그러나 중국은 김 위원장의 방중을 통해 안보·정치 현안에선 여전히 대북 관계를 우선하는 외교를 고수하고 있음이 재확인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성균관대 이희옥(정치학) 교수는 “중국은 내심으론 천안함 침몰이 북한 소행일 가능성이 크다고 인지한 것으로 보인다”며 “그럼에도 중국이 김 위원장의 방중을 한국에 통보해주지 않은 건 천안함 사태를 남북 간에 풀 문제로 국한하고, 한반도 정세를 관리해가는 쪽으로 정리한 결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에 따라 중국은 천안함 사건이 북한 소행으로 확인돼도 한·미의 대북 제재 협조 요구를 수용하지 않고 6자회담 재개에 집중할 가능성이 크다고 이 교수는 전망했다.

◆정부 대책은=정부는 천안함 문제에서 중국의 협조가 필수적인 만큼 자극적인 언행을 피하면서 차분한 협의로 태도 변화를 끌어낸다는 방침이라고 고위 당국자가 3일 밝혔다. 또 김 위원장이 “천안함과 북한은 무관하다”고 주장했다고 중국이 전해올 경우는 “후 주석도 객관적이라고 평가한 우리의 민·군 합동 조사 결과를 보고 판단하라”고 응수할 계획이다. 이어 조사가 완료돼 북한 소행이란 증거가 확보될 때 중국이 취할 입장에 대해 다각도로 예측해 적절한 대책을 준비한다는 방침이다.

강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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