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공짜병’고쳐야 소프트웨어 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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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소프트웨어(SW)는 공짜’ ‘제값 주고 사면 바보’라는 인식이 한국인에겐 뿌리 깊다. 애플 앱스토어에 등록된 18만5000여 건의 앱 가운데 한국인 고객이 내려받은 유료와 무료 앱의 비율은 일단 무료 앱으로 화면을 채운 뒤 유료 앱을 조심스레 살피는 모습을 흔히 보면서 가늠할 뿐이다.

유료 앱을 내려받은 친구나 동료의 ‘아이튠즈’ 계정을 빌려 공짜로 내려받기도 한다.

SW가 공짜의 대명사처럼 된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전자기기는 아무리 비싸도 지갑을 연다. 두께가 7.98㎜에 불과한 삼성전자의 990만원짜리 입체 LED TV는 출시 일주일도 안 돼 구입 문의전화가 끊이지 않는다. 아무리 비싸고 희귀한 SW를 갖고 있어도 폼이 나지 않아서일까.

우리나라 산업구조가 제조업 중심에서 선진국형 지식산업으로 쉽사리 옮아가지 못하는 이유를 SW 같은 무형자산의 값어치를 제대로 쳐주지 않는 풍토에서 찾기도 한다. KT 사장 출신인 이용경 국회의원은 “정부나 기업부터 SW 값은 부르는 게 값이라는 인식을 버리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지식산업인 바이오기술(BT)도 마찬가지다. 콩알보다 작은 100㎎짜리 알약 4정이 들어있는 발기부전 치료제 ‘비아그라’ 한 통이 6만원이라는 사실에 중·노년 소비자들은 불만을 터뜨린다. 4만원대의 20㎏들이 쌀 한 포대보다 비싸다는 걸 쉽사리 인정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값싼 중국산 짝퉁약을 복용하다 부작용으로 고생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글로벌 제약사들이 신약 하나 출시하려고 10년 가까이 평균 1조원 이상의 연구개발비를 쏟아 붓는 속사정은 안중에 없다.

애플의 ‘소프트 파워’를 실감한 삼성전자가 근래 프로그래머 채용과 양성에 열심이지만, 오랫동안 3D 업종으로 홀대받아온 SW 산업에 펄펄 뛰는 인재가 얼마나 남았을지 의문이다. 땀 흘려 일군 독창적 지식자산에 제값을 쳐주지 않는 나라에서 ‘선진 지식산업 국가’ 구호는 공염불이다.

심재우 경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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