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연기금 빼쓰기 제동 건 주무장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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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연기금의 여유 재원을 대형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나 국내 주요 기업의 경영권 방어에 쓰겠다는 정부의 계획에 주무장관이 공개적으로 제동을 걸고 나섰다.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은 국민연금을 경제부처가 마음대로 쓰지 못하도록 막겠다는 내용의 글을 복지부 홈페이지에 올렸다.

김 장관은 '국민연금 사용처에 대한 입장'이란 글에서 최근 국민연금 운용에 대한 일반 국민의 의구심과 불안감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다. 그는 "(국민 사이에) '내가 낸 돈을 정부 마음대로 하는 것 아니냐, 그래서 결국 원금도 못 받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과 불신이 증폭되고 있다"고 전했다. 우리는 정부의 국민연금 운영 계획에 대해 이미 여러 차례 우려를 제기했다. 이번 김 장관의 공개반론에서 보듯 이 같은 우려가 정부 내에서도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김 장관은 국민의 의구심과 불신이 국민연금제도 자체에 대한 부정으로 비화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문제는 이렇듯 논란이 많은 연기금 운영계획이 정부 내에서조차 충분한 논의나 합의를 거치지 않은 채 불쑥불쑥 나오느냐는 것이다. 오죽하면 주무부처의 수장이 나서서 "후일을 대비해 연금을 쌓아온 국민의 심정을 이해한다면 그 용처에 더 신중해야 한다"며 경제부처의 성급함을 지적했겠는가.

국민연금의 지급방식을 개선하고, 또 재원을 알뜰하게 불려나가지 않으면 머지않아 기금은 고갈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사태를 막기 위해 새로운 투자처를 개발하고, 기금 운영의 효율성을 높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국민연금 관리를 정부 주도로 한다 하여 이를 정부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돈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이와는 별도로 김 장관의 처신에도 문제가 있다. 그가 연금 문제를 그토록 심각하게 생각했다면 그동안 국무회의와 부처 간 협의 때는 무얼 하다가 이제 와 국민을 상대로 이의를 제기하느냐는 것이다. 국가의 주요 정책이 이런 식으로 표출된다면 정부의 운영 방식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