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청양 155㎞ ‘바이러스 점프’ 전파 경로 모르니 모든 지역 불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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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이에 정부는 대응의 수위를 높이기로 했다. 구제역 발생 국가를 여행한 축산업 종사자를 방역 당국에 통보해 관리하는 시스템을 갖추기로 했다. 농림수산식품부 이창범 축산정책관은 “법무부에 축산 농업인 명단을 보내 출국 때 자동 체크할 예정”이라며 “구제역 발병 지역 여행 사실이 방역 당국에 통보되면 문자 메시지로 소독 등 필요한 조치를 하도록 안내하고, 하지 않으면 강제 소독을 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정도로 구제역 확산을 막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무엇보다 당국이 바이러스의 전파 경로를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문제다. 청양의 구제역도 강화도에서 옮겨간 것으로 추정된다. 바이러스 혈청형이 같은 ‘O형’이다. 앞서 1월 포천에서 발생한 구제역은 ‘A형’ 바이러스에 의한 것이었다.

방역당국은 일단 사료 차량을 의심하고 있다. 4월 초 강화군에 사료를 공급한 회사가 4월 중순 청양 연구소에도 사료를 공급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단정하기는 어렵다. 같은 회사지만 강화에 사료를 보낸 곳은 김포지점이고, 청양에는 보령지점의 사료가 나갔다. 시간적으로도 맞지 않다. 청양군 연구소의 소에선 구제역 바이러스는 발견됐지만 항체는 없었다. 바이러스가 침입하면 가축이 자체 면역 체계를 통해 항체를 만드는데, 이게 없다는 것은 감염된 지 3~4일도 안 됐다는 의미다. 따라서 4월 중순에 사료를 공급한 차량이 바이러스를 퍼뜨렸다고 보기에는 시간적 간격이 너무 크다. 이창범 축산정책관은 “연구소 직원이 20여 명이고 드나드는 차량도 많아 사람이 옮겼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지난달 21일 충북 충주에서 발생한 구제역 역시 전파경로를 제대로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어떻게 옮았는지를 모르니 제대로 된 대책이 나오기 어렵다. 발생 지역 인근의 사람과 가축 이동을 막고 살처분하는 차단 방역을 하고는 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구체적인 증상이 나타나기 전에 발생 지역을 오간 사람과 차량이 바이러스를 퍼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구제역을 뿌리 뽑으려면 발생 지역과 역학적 관련이 있는 사람과 차량·가축 등을 모두 찾아내 소독과 살처분을 해야 한다. 그러려면 감염 경로를 찾는 게 필수다. 그러나 이를 파악하지 못한 채 사후 살처분에만 주력하고 있다.

구제역 예방접종을 할 수는 있다. 하지만 농식품부 관계자는 “백신 예방접종은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잘라 말했다. 백신 접종은 힘을 약화시킨 균을 몸 안에 주입해 항체를 만드는 것. 그러나 백신을 맞은 가축이 바이러스를 퍼뜨릴 가능성이 있다. 또 백신을 맞은 가축의 고기는 한 달 이상 냉동 후 판매해야 하고, 구제역이 추가로 발생하지 않아도 1년 이상 기다려야 청정국 지위를 얻을 수 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해방 이후 구제역이 처음 발생한 2000년에도 예방접종을 했다가 오히려 손실만 키웠다”며 “예방적 살처분을 강화하는 것이 더 경제적”이라고 설명했다.

최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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