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up] “M&A 실탄 100억 달러 준비 … 경기 회복 낙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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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철길에서 일했네’ 열창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왼쪽에서 둘째)이 1일(현지시간) 미국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에서 열린 주주총회에서 민속 현악기인 우쿨렐레를 연주하며 미국 민요인 ‘나는 철길에서 일했네(I’ve been working on the railroad)’를 부르고 있다. 버핏은 석 달 전 인수한 철도회사의 홍보 효과를 겨냥해 이 노래를 선택했다고 한다. [오마하 AP=연합뉴스]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그리스, 월가를 흔든 골드먼삭스 스캔들, 세계 금융산업의 판도를 바꿀 미국의 금융개혁….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현안들이 이어지면서 세계 투자자들의 눈과 귀는 ‘오마하의 현인’에게 다시 쏠렸다. 미국 버크셔 해서웨이의 워런 버핏(80) 회장 이야기다. 그는 1일(현지시간) 미국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의 퀘스트센터에서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총회를 하고 특유의 명쾌한 어법으로 현안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또 이날 버크셔 해서웨이는 1분기에만 36억330만 달러 순익을 올렸다고 발표했다. 1년 전 같은 기간 15억3000만 달러 적자를 냈던 것과 비교하면 ‘깜짝’ 실적이다. 그래서인지 버핏과 그의 평생 동료 찰리 멍거 부회장은 자신감에 넘친 모습이었다. 이들은 새로운 대규모 인수합병(M&A) 투자를 위해 100억 달러를 쓸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버핏은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이 되려면 어찌 해야 하느냐는 질문엔 “먼저 나를 총으로 쏴야 할 거요”라고 응수하기도 했다. 객석에선 지난해보다 5000여 명 많은 4만 명의 주주가 5시간30분 동안 두 사람의 ‘강의’를 경청했다.

◆"행동 나설 준비 돼 있다”=버핏은 미국 경제의 회복에 대해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그는 “지난 몇 달 동안 경기회복 추세가 상당히 강해졌다”며 “다음 주 월요일 100억 달러짜리 투자계약을 제안받는다면 ‘예스’라고 대답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우리는 행동에 나설 준비가 돼 있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버핏은 지난 2월 263억 달러에 달하는 철도회사 벌링턴 노던 샌타페이 인수 작업을 마무리한 바 있다.

주식시장에 대해서도 그는 낙관적인 견해를 밝혔다. “증시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그는 “시장이 다음 날, 다음 주, 내년에 어디로 튈지는 아무도 모른다”면서도 “다만 나라면 채권이나 현금보다는 주식을 들고 있겠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주가 상승에 대해 “저금리에 실망한 투자자들이 주식을 샀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골드먼삭스 ‘백기사’ 자처=“지난 35년 동안 거래 경험에 비춰볼 때 골드먼삭스가 부정에 가담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미국인의 존경을 받는 버핏이 요즘 미국인에게 가장 많은 욕을 얻어먹는 골드먼삭스를 거들었다. 자신의 돈이 걸려 있어서인지, 골드먼삭스에 대해선 철저히 옹호하는 자세를 취했다. 그는 2008년 9월 골드먼삭스 우선주에 50억 달러를 투자해 매년 5억 달러의 배당금을 받고 있다. 골드먼삭스로부터 초당 15달러를 받고 있는 셈이다.

골드먼삭스 최고경영자(CEO) 로이드 블랭크페인에 대해서도 변함없는 신임을 확인했다.

그는 이번 사태로 블랭크페인이 물러난다면 후임으로 누가 적합하냐는 질문에 “(블랭크페인에게) 쌍둥이 동생이 있다면 그에게 한 표 던지겠다”고 말했다.

골드먼삭스는 지난달 미 증권거래위원회(SEC)로부터 사기 혐의로 제소당한 데 이어, 4월 30일엔 뉴욕 지방검찰의 수사도 받기 시작했다. 검찰의 수사 착수 소식에 골드먼삭스 주가는 30일 하루 만에 9.4% 급락했다.

멍거는 최근 미국 정부가 추진하는 금융개혁에 대해 “지나치게 엄격하다”고 지적하면서도, 파생상품에 대해선 엄격한 규제를 해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 그는 “파생상품이 없는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나을 것”이라고도 했다.

◆그리스 위기 이제 시작=요즘 국제금융시장을 뒤흔들고 있는 그리스 위기에 대해 버핏은 “(유로화와 같은) 공동 통화를 사용하는 국가를 구제하는 첫 시험 무대”라며 “이는 극적인 드라마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그리스는 주권 국가이면서도 자국 통화가 없기 때문에 위기가 닥쳐도 돈을 찍어낼 수 없다”며 “이런 상황이 유로화의 미래에도 도전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영화의 결말이 어떻게 끝날지 나도 잘 모르겠다”며 “(결말이 좋지 않을) 이런 영화는 보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멍거 부회장도 “그리스 사태는 국가채무 위기의 시작일 뿐”이라고 거들었다. 버핏은 이어 “금융위기 이후 세계 각국이 초저금리 정책을 펴며 돈을 마구 풀어 인플레이션 위험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인플레이션 위험 아래에선 세계 어느 국가든 통화가치를 오랫동안 견실하게 유지하는 게 어렵다”고 말했다.

오마하(네브래스카주)=정경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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