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청소년축구 '아름다운 투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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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경기가 끝나자 너나 할 것 없이 나동그라졌다. 턱 밑까지 숨이 차올라 서 있을 힘도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일어설 자격이 있었다. 한국 여자축구사에 길이 남을 1승. 그러나 '꿈의 8강'까지 단 한골이 부족했다. 이기고도 울었다.

한국 여자청소년(19세 이하) 축구대표팀이 18일 태국 방콕 수파사라니 경기장에서 열린 세계여자청소년축구선수권 C조 리그 최종전에서 러시아를 2-0으로 꺾었다. 한국 여자축구가 국제 대회 본선에서 거둔 첫 승리였다. 1승2패(승점 3)를 기록한 한국은 2위 러시아와 골 득실차(-2)까지 같았지만 다득점에서 2골 뒤졌다. 3-0으로 이겼다면 러시아를 골 득실차로 제쳐 조 2위로 8강에 오를 수 있었다. 한국은 각 조 3위 중 상위 2개팀에 주어지는 와일드카드마저 골 득실차에서 밀려 따내지 못했다.

한 경기, 한 경기 힘겹게 싸워오는 동안 한국 청소년 선수들은 성장하고 있었다. 미국전에 비해 수비의 안정감이 살아났고, 스페인전에 비해 공격의 세밀함이 더해졌다. 국가대표팀 간 전적에서 우위(5전3승1무1패)인 러시아가 쩔쩔맸다.

한국은 전반 21분 1m59cm의 단신 이장미(영진전문대)의 그림 같은 헤딩골로 앞서갔다. 이장미는 박희영(영진전문대)의 코너킥을 페널티지역 모서리에서 솟구치며 머리로 방향을 바꿔놓았다. 공은 무지개처럼 휘어지며 골망 오른쪽에 꽂혔다.

기세가 오른 한국은 후반 들어서도 매서운 공격을 펼쳤다. 후반 10분 이장미가 미드필드 중앙에서 머리로 연결한 공을 박희영이 바람처럼 몰고 달렸다. 박희영이 강하게 찬 공은 왼쪽 골포스트를 맞고 문 안으로 굴러들었다.

이제부터는 한국의 일방적인 공세였다. 필사적으로 발을 내밀고 머리를 갖다댔다. 단 한 골, 한 골이면 8강 진출이 가능했다. 그러나 거기까지가 한계였다. 조급한 마음 때문인지 슈팅에 모두 힘이 들어갔다. 후반 40분과 인저리타임에 박은선(위례정산고)이 날려보낸 프리킥과 중거리 슈팅이 차례로 크로스바를 넘으면서 8강을 향한 한국의 꿈도 함께 사라졌다.

강혜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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