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나미의 마음 엿보기]‘소통’ 과잉의 시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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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호 15면

사람들이 모여 수다를 떨고 있다. 한 명이 화장실을 가니, 남은 이들이 자리를 비운 사람을 화제로 삼는다. 또 다른 이가 나간 후, 그 사람 역시 다시 도마에 오른다. 남은 사람들은 이제 자리를 뜰 수가 없다. 자신이 없는 사이 벌어질 일이 빤히 보여 이를 악물고 자리를 지킨다.

코미디 같지만 흔하게 접하는 상황이다. 모임에서 벗어나면 남에게 욕먹거나 놀림감이 될까 봐, 남들 다하는 것 못하면 뒤처질까 봐, 이 모임 저 모임 기웃거리고 다니고 남하는 건 다 해 봐야 하는 이른바 네트워킹에 집착하는 한국인이 많다. 혼자 있을 때도 끊임없이 전화를 들고, 메시지를 보내고, e-메일을 하고, 블로그를 찾아다니며, 트위터를 기웃거린다.

닭이나 원숭이 같은 군락 동물들은 약하고 잘 어울리지 못하는 개체를 따돌려 먹이를 먹을 때도 끼지 못하게 해 비실거리다 결국 병들어 죽게 만든다. 현대인들의 무의식 속에는 이처럼 자신도 병든 닭의 처지가 될까 두려워하는 공포가 숨어 있는 것 같다. 독립적으로 결정을 하지 못해 끊임없이 남에게 확인받고 인정받아야 하는 ‘의존성 성격장애’를 앓고 있는 이도 많다. 어머니와 한시도 떨어져 있지 못하는 아이의 심정을 극복하지 못한 탓이다. 심리적으로 보자면 이들의 삶의 주체는 자기 자신이 아니라 남이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남들은 무엇을 하며 지낼까” 같은 불안에 사로잡혀 정작 자신은 소외시키는, 왜곡된 타자 지향적인 성격이다. 물론 히키코모리처럼 타인과의 정상적인 관계를 거부하고 고립되는 분열형 성격장애나 공감의 능력이 없는 아스퍼거증후군도 건강한 것은 아니나 잠시도 혼자서는 있을 수 없다면 강하고 성숙한 자아는 확실히 아니다.

따지고 보면 인류 역사에서 문화를 발전시킨 주역은 고독하게 남겨졌기 때문에 눈물을 삼켜 가며 결핍과 고독을 극복해 간 국외자(Outsider)들이다. ‘홀로 됨’과 ‘침묵’을 즐길 줄 아는 배짱은 진짜 자기 개성을 찾는 여유를 누리게 해 주는 선물이다. 머리가 꽤 좋았던 라이프니츠는 이런저런 모임과 직함들을 너무 좆는 바람에 정작 자신의 철학 연구를 소홀히 해 이렇다 할 업적을 남기지 못했다. (게다가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은 겨우 하나였다니!) 몰려다니면서 주류로서의 즐거운 인생을 편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특별히 아쉬울 것이 없으니 창조의 수고로움을 굳이 참아 낼 필요가 있겠는가. 새로운 소통 수단과 명품이 등장하면 재빨리 쓸 줄 아는 능력 있는 얼리어답터와 신상남, 신상녀들이 함께 어울려 우아한 인생을 사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다.

단 절제 없는 과잉소통은 남에게 폐를 끼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은 고려해 줬으면 한다. 불쾌한 소음을 주변에 쏟아 내면서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공공시설 내의 휴대전화 사용자, 독창성 없는 내용을 여기저기 퍼 나르는 표절의 달인, 유언비어의 재생산으로 평화로운 영혼을 잠식하는 이, 모두 소통이란 이름으로 세상을 오염시킨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다. 좋은 정보를 걸러 듣고, 불필요한 전달을 자제하는 것도 새로운 소셜네트워크 시대에 절실히 필요한 덕목이 아닐까. 존재가 유한한 시간을 의식할 때 비로소 그 아름다운 의미를 획득할 수 있듯이 절제된 침묵으로 충실하게 영근 소통만이 진짜 그 빛을 발할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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