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해신 - 제1부 질풍노도 (45)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6면

제2장 신라명신

- 그러므로.

나는 향로 속에 꽂힌 타다 남은 향을 뽑아 올리면서 생각하였다.

- 나를 이곳까지 오게 만든 사람은 신라사부로가 아니라 바로 장보고인 것이다. 그는 교묘한 방법으로 나를 이곳까지 유혹하여 끌어당긴 것이다. 내가 이곳에서 발견한 것은 신라사부로의 붉은 갑옷이 아니라 신라사부로의 수호신이었던 바다의 신, 장보고인 것이다.

나는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 향에 불을 붙였다. 금세 향기로운 향냄새가 피어올랐다. 나는 그 향을 다시 향로 속에 꽂아 찔러 넣었다.

이것으로 됐다고 나는 생각하였다.

이것으로 신라사부로의 넋을 추모하는 분향은 끝이 났다고 나는 생각하였다. 더 이상 그곳에 머무를 이유가 없었으므로 나는 미련 없이 신라사부로의 무덤을 떠났다.

울창한 숲 속을 걸어 내려오면서 나는 시장기를 느꼈다. 이미 오후 3시가 넘어 있었다. 점심시간이 한참 넘어 있었지만 뭔가를 먹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내 가슴은 역사 추적의 새로운 대상을 발견해 낸 흥분으로 계속 뛰고 있었다.

문득 내 머릿속으로 신라승 도현이 엔친에게 보내준 송별시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바다는 미로를 감추고 있고 또한 불교의 문을 가로막고 있어/

비록 용궁으로 들어가려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고는 하지만/

여의주를 얻고 머리에 꽂는 귀한 장식을 얻은 사람은 그대 혼자뿐이네…. "

그 중 첫번째 구절의 원문이 내 머릿속에 떠올랐다.

"해장미로조현진(海藏迷路阻玄津)

용궁입자수다객(龍宮入者雖多客)"

그렇다.

나는 소리를 내어 중얼거렸다.

바다는 아직도 수많은 미로를 갖고 있다. 바다 속 용궁으로 들어가려는 사람은 많이 있어도 바다는 아직도 수많은 미궁 속에 빠져있는 것이다. 그 바다 속에서 섬사람 장보고는 나를 미로 속으로 유인하여 부르고 있는 것이다.

장보고는 어떻게 해서 그 바다의 미로 속에서 바다의 신으로 부활할 수 있었던가. 문성왕 8년, 846년. 자신의 부하 염장(閻長)에 의해서 암살 당해 비참하게 죽은 장보고는 어떻게 해서 바다 속의 미로(迷路)를 헤치고 현진(玄津)을 뛰어넘어 해신(海神)으로 부활할 수 있었던가.

나는 숲길을 지나 좁은 언덕길을 빠르게 걸어 내려왔다. 행길에 서서 어떻게 할 것인가를 잠시 망설였다.

이대로 오쓰시로 걸어서 갈 것인가, 아니면 택시를 탈 것인가 생각하다가 문득 길 건너편에 작은 간이역 하나가 있는 것을 보았다.

교토의 외곽지대로 들어가는 교외선 역이었다. 옛날 서울의 시내를 달리던 전차와도 같은 협궤(狹軌)열차인 모양이었다. 협궤열차를 타고 교토로 돌아가는 것도 운치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표를 사고, 역사 안으로 들어섰다. 보통 열차들처럼 지하에 마련된 역사가 아니었고, 간이역이었으므로 지붕이 없는 개방된 역사였다. 역사에는 작은 벤치만이 마련되어 있을 뿐이었다.

어딘가에 운행을 알리는 시간표가 붙어있겠지만 나는 기다리면 언젠가는 오겠지, 하는 편한 마음으로 교토 방향으로 가는 자리에 앉아서 담배를 피워 물었다. 간이역 구내 역시 온통 벚꽃들로 가득차 있어서 꽃대궐을 이루고 있었다. 그래서 대낮에 하얀 초롱등불을 밝혀든 느낌이었다.

- 이제 모두 끝났다.

나는 벤치에 앉아 두 손을 벌려 기지개를 펴면서 생각하였다.

- 이제 신라사부로에 대한 추적은 모두 끝이 난 것이다. 이제 다시 미데라를 찾을 기회는 없을 것이다.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봄날이 가듯 저처럼 찬란하고 저처럼 황홀한 벚꽃이 피는 봄날도 이제 다시는 만날 기회가 없을 것이다.

우왕 - .

벚꽃터널을 뚫고 교외열차가 들어서고 있었다. 나는 열차를 타기 위해 앉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 이렇게 해서 내 역사 추적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된 것이다. 장보고에 대한 추적은 이렇게 시작되었던 것이다.

글=최인호

그림=이우범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