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up] 로치 모건스탠리 아시아 회장 “비상 상황은 끝나 이젠 출구로 갈 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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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 상황은 끝났다. 금리를 올릴 때가 됐다.”

스티븐 로치(64·사진) 모건스탠리 아시아 회장은 이제 세계가 ‘출구’로 향할 때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29일 저서 『넥스트 아시아(Next Asia)』의 국내 출간을 맞아 서울 여의도에서 기자간담회를 하면서다. 월가의 대표적 이코노미스트인 그에게는 ‘영원한 비관론자’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특히 금융위기가 닥치기 한참 전부터 저금리의 위험과 부동산 시장의 거품 붕괴를 경고했다.

그는 이날 “한국은행을 포함해 세계 중앙은행의 출구전략이 너무 늦어질 위험이 있다”면서 “자칫하면 금융위기 이전에 시장에 거품을 일으켰던 실수를 반복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섣불리 금리를 올렸다간 막 회복되고 있는 경기가 다시 꺾일 수 있다는 시각에는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는 “금리를 조정하자는 것은 당장 위기 이전의 수준으로 올리자는 게 아니다”며 “회복세가 약하다면 약한 대로, 금리를 거기에 맞추면 된다”고 말했다.

최근 세계 금융시장을 흔든 남부 유럽의 재정위기에 대해선 다소 비관적인 전망을 내놨다. 로치 회장은 “이미 신용 위험이 그리스에서 포르투갈·스페인·이탈리아 등으로 번지고 있다”면서 “금융위기 이후 일어나는 전형적 상황이자 세계 경제회복에 마이너스 요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1차 책임은 재정관리를 제대로 못한 해당 국가에 있다고 말했다. “그리스 사태에서 얻어야 할 교훈은 호황기에 재정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불황기에 폭발적으로 문제가 터져 나온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넥스트 아시아』의 국내 번역 출간을 기념해 한국에 온 스티븐 로치 모건스탠리 아시아회장이 29일 서울 여의도에서 경제현안에 대해 강연하고 있다. [모건스탠리 제공]

이번 저서에서 그는 ‘아시아 역할론’을 주창하고 있다. 금융위기 이후 아시아는 상대적으로 빠르게 회복하며 세계 경제의 희망으로 부상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의 수출지향적 성장 모델로는 지속적인 성장이 불가능하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미국이 더 이상 ‘과잉 소비’를 지탱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중국이 이를 대신해야 하는데, 그러자면 내수시장을 키우는 데 더 힘을 쏟아야 한다는 논지다.

문제는 방법론이다. 로치 회장은 “세계 경제의 불균형을 환율 재평가로 바로잡을 수 있다는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못 박았다. 그는 최근 위안화 절상 압력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 폴 크루그먼 교수와 날카롭게 대립하기도 했다.

그는 “1980년대 일본이 엔화를 절상했지만 경상수지 흑자 폭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고, 2000년대 미국 달러화가 약세였지만 미국의 적자는 줄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통화정책은 경상수지 적자를 해소하는 데 있어선 우회적인 방법일 뿐”이라는 얘기다. 미국이 중국 때리기에 골몰하기보다는 스스로 마이너스 상태의 저축률부터 끌어올려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상대적으로 빠르게 회복하고 있는 한국경제에 대해선 호평을 내놨다. 그는 “일부에선 원화가치가 절하돼 회복이 빨랐다고 얘기하지만, 그건 결정적인 게 아니다”며 “금융위기가 터지기 전 수출시장을 선진국에서 개도국으로 전환해 놓은 게 중요한 요인이었다”고 말했다.

한국이 고령화에 대처하는 방식도 결국 그 연장선상에서 찾아야 한다는 조언이다. 그는 “인구가 고령화되면 내수를 키우기 어려우므로 급격하게 발전하는 신흥시장을 중심으로 수출을 늘리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현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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