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미국 요청 앞서 먼저 성의 표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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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정부가 미국의 요청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미국의 대(對)테러전에 파병하겠다고 한 것은 한.미 동맹관계를 고려한 적극적 입장 표명이다.

미국의 작전 개시가 임박하면서 실질적 지원책을 내놓음으로써 동맹국으로서 최대한의 성의를 보인 것이다. 여야도 한 목소리로 정부의 조치가 "적절하다" 고 평가했다.

미국의 동맹국들 움직임도 서둘러 지원책을 내놓는 계기가 됐다. 영국을 비롯한 4개국은 이미 전투병 파견을 결정했고, 일본 등 18개국은 비전투 분야 지원 입장을 밝혔다. 특히 현행법상 자위대의 전투지역 파병이 어렵다고 본 일본이 새 법을 만들어 적극 지원하겠다고 한 것이 우리 정부에 자극제로 작용했다.

외교통상부 관계자는 "우리가 지지 성명을 낸 국가군(群)에 머물 수는 없지 않으냐" 고 말했다. 내년에 월드컵.아시안 게임을 개최하는 것도 대테러전에 팔을 걷어붙이게 하는 요인이다.

지원 내용은 1991년 걸프전 때와 비슷하다. 당시 정부는 29번째로 1백54명의 의료지원단, C-130 수송기 5대(운영 요원 1백50명)를 파견하고 5억달러의 전비(戰費)를 부담했다.

다만 현재로선 구체적 지원규모나 파병시기를 추측하긴 어렵다. 미국의 작전계획을 통보받지 않은 데다 전투가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김하중(金夏中) 청와대 외교안보수석도 파병 시기와 규모에 대해 "미국과의 협의가 필요하다" 고 밝혔다.

향후 쟁점은 전투병 파견과 전비지원 여부다. 전투병 파견 문제는 인명 피해가 날 수 있는 데다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의 강한 반발을 살 수 있다는 점에서 미국의 요청이 있을 경우 두통거리가 아닐 수 없다.

합동참모본부 관계자는 "미국이 특수부대 지원을 요청하면 한.미 상호방위조약상(3조) 거부하기 쉽지 않다" 고 말한다. 전투병 파견 요청을 거절할 명분이 마땅치 않다는 얘기다.

전비도 부담할 것이 확실시된다. 金수석도 "검토하고 있다" 고 말했다. 그러나 전투병 파견과 전비 분담은 전황(戰況)과 작전 기간에 달려 있다.

앞으로 미국의 요청이 있을 경우 정부는 국무회의와 대통령 재가, 국회 동의를 거쳐 의료.수송단을 보내게 된다. 이 문제는 현재 야당의 입장으로 미뤄볼 때 큰 어려움은 없을 전망이다.

김민석.오영환 기자

사진=김춘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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