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주적 폐지'하자는 국방장관의 안보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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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윤광웅 국방장관이 "'특정국가가 주적'이라는 표현을 국방부가 쓴 것은 언어도단"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국방백서에 북한이 주적으로 명시된 대목을 삭제하겠다는 의지표명이다.

북한 주적 명시에 대해선 양론이 있다. 찬성 쪽에선 첨예하게 정치.군사적 대치를 하고 있는 북한 이외에 우리 안보를 위협하는 국가가 어디 있느냐는 것이다. 반대 쪽은 북한과 대치하고는 있지만 동시에 화해협력의 대상이니 굳이 '주적'이라는 표현을 쓸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사안은 우리 사회를 양분하고 있는 정치이슈다.

문제는 왜 국방장관이 이런 식의 발언을 해 평지풍파를 일으키느냐는 점이다. 그렇지 않아도 국가보안법 문제로 안보에 대한 국민적 우려가 높아진 상황에서 안보를 책임지고 있는 국방장관이 '북한=주적 폐지'라는 이슈를 들고 나온다면 국민은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국방장관이 북한을 적으로 생각하지 않겠다는 생각인가?"라고 오해받기에 충분한 발언이다. 혹시 통일부 장관이 이런 말을 했다면 또 모르겠다. 군의 수장인 국방장관이 이런 말을 한다면 휴전선을 지키고 있는 우리 장병은 힘이 빠질 수밖에 없다.

군의 임무는 뭐니뭐니 해도 국가안보다. 국방은 고지식할 정도로 철저해야 한다. 따라서 군의 최고책임자인 장관은 여기에 온 힘을 쏟아야 한다. 지금 주한미군 철수에 따른 전력공백 위험이 크다. 또 북핵문제로 한반도에 긴장이 고조될 가능성도 있다. 내부적으론 철책이 뚫리는 등 방어태세에 구멍이 나고 있다. 국방장관이 이런 일에 골몰해도 시간이 부족할 것이다.

얼마 전 청와대 고위 간부가 장성들 상대로 이런 식의 발언을 했다가 반발을 산 적이 있다. 국방장관의 이번 발언은 이와 궤를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윤 장관은 '어느 날 갑자기 주적 개념을 넣은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어느 날 갑자기 이를 빼려는 것도 문제 아닌가. 다분히 청와대를 의식한 발언이라고 보고 싶다. 바로 그런 점에서 이번 발언은 부적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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