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작가의 뮤직다이어리] 일본 밴드 '러브 사이키델리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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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고등학교 때 글을 잘 쓰기 위한 3원칙을 배웠다.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하라. 사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당연한 말이다. 실천하기가 어려울 뿐. 이 원칙을 음악에 적용한다면 '많이 듣고 많이 만들고 많이 생각하라'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많은 음악인들을 만나봤다. 그들 중 좋은 음악을 만드는 이들에게는 어릴 때부터 음악을 끼고 살았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들은 어느 한 장르에만 국한하지 않고 시대와 국경을 초월하여 음악을 들었다. 지난 13일 대학로 SH클럽에서 열렸던 일본 듀오, 러브 사이키델리코의 내한공연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었다. 드럼을 중심으로 오른 쪽에는 각종 디지털 장비가, 왼쪽에는 지극히 아름다우면서 복고적인 소리 내는 하몬드 오르간과 전자 피아노가 놓여 있었던 이날의 무대 세팅은 그들의 음악을 상징하는 듯 했다. 러브 사이키델리코는 1970년대 포크 록과 사이키델릭 록 등을 90년대 모던 록의 감성으로 소화하는 밴드다. 현재 총 석장의 앨범을 발매한 이들이 데뷔한 시기가 2001년이었으니 러브 사이키델리코의 음악을 이렇게 정의할 수 있을 것 같다. 70년대의 토양에서 90년대의 공기를 마시고 자란 나무가 맺은 21세기의 열매. 그 열매를 향유하는 소비자는 당연히 옛날 음악보다는 지금의 음악에 열광하는 젊은이들이다. 러브 사이키델리코가 지난 시대의 음악을 단순 재현하는 게 아니라, 옛 것을 기반으로 동시대적 감성을 창조하기에 가능한 일이리라. 이날 공연은 그런 힘의 기반이 성장기에 그들이 빠져 있었던 음악의 바다에서 샘솟는 것임을 알게 해줬다. 재니스 조플린의 영향이 짙게 느껴지는 목소리를 가진 보컬 구미는 음침한 음악감상실에서나 봤던 서양 록 스타들의 액션을 모방, 아니 소화하고 있었으며 앵콜 때 선보인 밥 딜런의 'Like A Rolling Stone'이나 초기 히트곡 'Lady Madonna'를 연주할 때 중간에 삽입했던 스티븐 울프의 명곡 'Born To Be Wild'는 그들의 사춘기 때 일기장의 한 페이지를 엿보는 듯했다.

역시 많이 듣고 많이 연주하고 많이 생각해야 분명한 자기 색깔이 있는 좋은 음악을 만들 수 있다. 이 중 어느 하나라도 빠진다면 그 음악은 깊이가 없거나, 기본이 안되거나, 표절이거나, 셋 중 하나밖에는 되지 않을 것이다. 끊임없이 잊혀지는 많은 음악들이 증명하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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