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혈압 약 당뇨 합병증에도 효과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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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1면

고혈압 약 만큼 환자들이 복용을 꺼리는 약물도 드물다.

평생동안 매일 약을 빼놓지 않고 복용해야 한다는 의사들의 말이 실감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유는 아무 증상이 없기 때문.

뒷목이 뻐근하다거나 어지럽고 머리가 아픈 증상은 전혀 고혈압과 관련이 없다. 대한고혈압학회가 최근 국내 고혈압 환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2%만이 적절한 약물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고혈압은 '침묵의 살인자' 란 별명 그대로 약물치료를 게을리하면 혈관을 서서히 손상시켜 뇌졸중이나 심장병을 일으켜 생명을 빼앗는다. 증상이 없어도 약물을 복용해야하는 이유다.

게다가 최근 대규모 다국적 임상시험을 통해 고혈압 약을 복용 해야하는 두가지 이유가 추가로 밝혀졌다. 고혈압 약을 꾸준히 복용해야 하는 이유들을 살펴본다.

◇ 고혈압 약은 당뇨 환자의 콩팥을 보호한다=당뇨 환자들이 겪는 가장 치명적 합병증의 하나가 콩팥이 망가지는 신부전증이다. 콩팥 혈관에 염증이 생겨 배설 기능이 떨어지고 이 때문에 심한 경우 혈액 투석이나 콩팥 이식을 받아야 한다.

미국의 의학잡지 NEJM은 최근 29개국 1천5백여명의 당뇨와 고혈압을 동시에 앓고 있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고혈압 치료제 코자를 3년6개월 동안 투여한 결과를 게재했다.

연구팀인 미국 하버드의대 신장내과 브레너 교수팀은 말기 신부전증으로 악화될 확률이 28% 감소했다고 밝혔다. 코자는 안지오텐신 전환효소란 효소를 억제해 혈압을 떨어뜨리는 고혈압 치료제로 의사의 처방이 필요한 전문의약품이다.

고혈압 약이 당뇨 환자의 콩팥을 보호한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되긴 이번이 처음이다.

이밖에도 콩팥이 망가질 때 단백질이 소변으로 빠져나가는 단백뇨도 35% 줄어든 것으로 밝혀졌다.

문제는 당뇨와 고혈압이 바늘 가는데 실 따라가듯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 당뇨 환자의 50~60%가 고혈압을 앓으며 고혈압 환자의 20~30%가 당뇨를 앓을 정도로 동시에 발병하는 경우가 많다.

충남대의대 신장내과 이강욱 교수는 "당뇨와 고혈압을 동시에 앓고 있는 사람은 콩팥 보호 차원에서 고혈압 약 복용을 더욱 철저히 할 필요가 있다" 고 말했다.

◇ 고혈압 약은 뇌졸중 재발률을 낮춘다=세계보건기구(WHO)와 세계고혈압학회는 뇌졸중 환자에게 고혈압 치료제 아서틸을 투여한 결과 뇌졸중 재발률을 28% 감소시켰다고 최근 이탈리아에서 개최된 유럽 고혈압학회에서 발표했다.

1997년부터 4년간 아시아와 유럽지역 뇌졸중 환자 6천1백여명을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다.

특히 뇌혈관이 터져 생기는 출혈성 뇌졸중의 발생률은 50% 줄였으며 치매 및 인지(認知)기능 장애도 각각 34%, 45% 감소시켰다는 것. 아서틸도 코자와 마찬가지로 안지오텐신 전환효소를 억제해 혈압을 떨어뜨린다.

고혈압 환자가 생명을 잃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뇌혈관이 터지거나 막혀 발생하는 뇌졸중이다.

한양대의대 순환기내과 이방헌 교수는 "국내 뇌졸중 환자의 50%가 재발을 일으켜 반신불수가 되거나 생명을 잃고 있다" 며 "고혈압 환자 중 과거 뇌졸중 발작을 경험한 사람일수록 고혈압 약을 매일 꾸준히 복용해야 한다는 것이 이번 연구결과의 의미" 라고 말했다.

홍혜걸 기자.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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