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나] 수필가 이정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1면

문화원에서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조직하고, 크고 작은 문예행사를 십수년 넘게 담당해오면서 내가 늘 마음속에 두고 있는 것은 '생명 있는 것의 창출' 이다. 범수도권의 도시로 급변하는 천안은 문화 인프라 구축 면에서 아직 부족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안정된 문화향유 계층, 즉 대중이 아닌 서양 근대적 의미의 퍼블릭의 대두를 나는 기다린다. 아니 그걸 북돋우려고 일을 한다.

사십대 중반의 나는 처음에 동창들에게 문화원 근무를 굳이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지역에 근거를 둔 생동감있는 토박이 문화의 증발 속에서 지역사회 지킴이로서의 자부심이야 새삼 언급할 필요가 없다. 순간순간 갈등과 회의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내 마음을 다잡게 해준 가르침은 이곳의 사람들, 그리고 책이었다.

이런 점에서『이 사람을 보라』(해냄)는 우리 시대 '자신의 삶을 스스로 자기답게 살아낸' 치열한 생을 소개하고 있는데 나혜석.신중현.김기창.김수영 등 현실을 뛰어넘었던 40인의 기수들이 빛난 눈을 뜨고 있는, 그래서 내게 있어서는 필독서다.

또한『우리 문화의 길잡이』(고려원)에서 강조하고 있는 '우리 문화를 다른 문화와 다르게 보는 연습' 이라든가,『문화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푸른숲)이 우리에게 끊임없이 요구하는 발상의 전환을 통해 반복되는 업무 속에서 자칫 매너리즘에 빠진다거나 스스로 합리화하려는 오류를 다잡아 주는 책이다.

그러나 나는 이 고단한 시대 '서정의 가치' 도 소중하게 생각한다. 『작은 것이 만드는 큰 세상』(김영사)에서는 강인한 힘과 의지의 필요성을,『나는 누구인가』(샘터사)를 통해 구체적 삶의 주체로서의 자아는 어떻게 파악되어야 하는가를 한수 배웠다.

그리고 얼마 전『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는 것』(사람과 사람)을 통해 김수환 추기경의 삶의 향기를 맛보았다. 자, 사는 모양새는 어수선하고, 내용을 보면 철저하게 개성을 잃어가는 우울한 시대에 어떻게 사는 것이 의미있는 삶인가를 바로 책 속에서 확인해 보자.

이정우 <천안문화원 사무국장.수필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