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병욱 칼럼] 성역없는 수사만이 살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G&G 회장 이용호(李容湖)씨 사건은 이른바 의혹사건의 요소를 골고루 갖춘 것 같다.

그의 범죄 혐의는 거액의 구조조정기금 횡령 및 주가조작이다.

이런 범죄적 기업활동은 감독관청.금융감독원.국세청.검찰.국가정보원 같은 조사.수사기관의 비호 또는 묵인 없인 불가능하다. 그 불가능한 것을 가능케 하기 위해 동원되는 것이 로비자금과 연줄이다.

항상 돈이 필요하고 힘과 인맥을 갖춘 정치인은 이들의 손쉬운 접근 대상이다. 이런 전형적인 의혹사건의 요소를 이용호 게이트는 고루 보여주고 있다.

*** 의혹요소 고루 갖춘 사건

금감원은 지난해 3월 증권거래소로부터 李씨 계열 2개 회사의 주가조작 혐의를 통보받고도 12월에야 검찰에 통보하는 늑장조사 의혹을 받고 있다.

그 과정에서 민주당 의원과 국정원의 전화가 있었다는 것이다. 李씨 계열사에서 침몰군함 금괴 인양 계획을 발표하면서 해양수산부에는 10억여원어치 발굴 신고를 해놓고 증권가엔 20조원 상당이라고 부풀린 루머를 퍼뜨리며 주가를 조작했는데도 해양수산부는 아무 소리 않고 방치했다.

야당의원들은 李씨 계열사에 대한 봐주기 세무조사와 여권 실세들의 정치자금 관리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이번 대검이 李씨를 구속한 같은 혐의로 서울지검이 이미 지난해 5월 李씨를 긴급체포했다가 하루만에 석방하고 결국 무혐의 처리했다는 사실이다.

그때도 상당기간의 내사를 거쳐 李씨를 긴급체포했던 수사진은 구속수사를 주장했다고 한다. 최근 대검의 李씨 구속으로 당시 지검의 무혐의 처리는 잘못임이 증명됐다. 여당 내의 검찰 출신 의원들마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을 정도다.

이런 여러 정황으로 볼 때 이용호씨 사건은 단순한 경제범죄사건을 넘었다.

오히려 그러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활보가 가능했던 로비.비호.은폐의 실태와 배경으로 초점이 옮겨져 버렸다.

법무장관의 '성역 없는 철저 수사' 지시는 이러한 의혹을 푸는 하나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 검찰의 내부 감찰 및 수사 확대와 함께 감사원도 금감원.해양수산부.국세청 등을 대상으로 제기된 의혹에 대해 철저한 감사를 벌여야 할 것이다.

이 정권 들어 검찰은 검찰 내부와 권력주변에 대한 수사에서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했다. 검찰총장 부인이 관련됐던 고관부인 옷 로비 사건도 단순한 불법.부도덕한 사건을 섣불리 축소.은폐하려다 정권에 큰 정치적 부담을 안겨주는 의혹사건으로 키웠다.

이번에도 이런 어리석은 일이 반복돼선 안된다. 검찰로서도 검찰이나 권력 내부의 비리를 드러내는 데는 부담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진상을 밝혀 책임을 물으면 오래 가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을 축소.은폐하려다 폭발력만 축적하기 마련이다. 1987년 박종철(朴鍾哲)군 물고문 치사사건과 70년대 미국의 워터게이트사건이 그것을 웅변한다.

지난 문민정부 때도 권력과 관계된 검찰의 신뢰는 별로 높지 않았다.

그러나 정권 말년 의혹사건의 중심에 있던 대통령의 아들을 구속 기소함으로써 검찰의 위상은 상당히 개선됐다. 그때도 현직 대통령의 아들을 구속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검찰지휘부의 의견도 일치하지 않았고, 권력 내부의 반대와 압력도 거셌다. 당시 대검중앙수사부장의 그야말로 직을 건 성역 없는 수사와 대통령을 중립화시키는 청와대 담당수석의 직간이 이 어려운 일을 해냈다.

*** 정권.검찰 도덕성과 직결

그때에 비하면 이번 사건을 성역 없이 수사할 수 있는 검찰의 여건은 훨씬 수월해 보인다. 법무장관의 철저 수사 지시도 있고, 관련자 중에 그렇게 대단한 실세가 있는 것 같지도 않다. 자기 살을 베겠다는 각오만 서 있으면 검찰에 대한 국민 신뢰를 회복할 더 없이 좋은 기회일 수 있다.

만일 검찰의 수사가 의혹을 제대로 풀지 못하면 야대(野大)의 현 상황에서 국회 국정조사.특검제로 갈 게 뻔하다. 국회 국정조사야 정치적인 것이니 그렇다 하더라도 특검제로까지 가는 사태는 바람직하지 않다.

특별검사의 수사는 공정성.독립성을 기할 수는 있으나 의혹을 해소시킬 만큼 실효적이긴 어렵다. 검찰의 명예를 걸고 특검제로 갈 명분을 주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번 사건의 엄정한 처리에 정권과 검찰의 도덕성이 걸려 있다. 이번에 신뢰를 잃으면 회복할 시간도 없다. 그야말로 성역 없는 수사와 감사만이 살 길이다.

성병욱 <본사 고문. 고려대 초빙교수>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