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금융개혁법안 상원서 처리 못 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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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민주당이 금융개혁법안을 미국 상원에서 처리하는 데 실패했다.

민주당은 26일(현지시간) 상원에서 금융개혁법안 상정을 표결에 부쳤으나 찬성 57표를 얻는 데 그쳤다. 전체 100석인 상원에서 민주당이 야당의 의사 진행 방해(필리버스터)를 피해 법안을 상정하자면 최소 60석의 찬성표를 확보해야 한다. 반대는 41표였으며 공화당원 두 명은 기권했다.

이날 표결에선 민주당 소속 벤 넬슨 네브래스카주 상원의원이 당론에 반해 반대표를 던졌다. 월스트리트 저널(WSJ)은 넬슨이 지역구 금융회사 버크셔 해서웨이를 이끌고 있는 워런 버핏의 로비를 받고 반대표를 행사했다고 보도했다. 민주당이 60석을 얻는 데 실패하자 민주당 해리 리드 원내대표도 전략적으로 반대표를 던졌다. 같은 법안을 다시 상정할 수 있는 기회를 얻기 위해서다.

금융개혁법안 통과를 위해 23일 뉴욕 맨해튼까지 날아가 월가를 압박했던 오바마 대통령은 “깊이 실망했다”고 논평했다. 그는 “일부 의원은 반대표를 던지는 게 현명한 정치 전략이라고 믿고 있는 모양”이라며 “금융회사 로비스트와 손잡고 이번에 아예 금융개혁을 좌초시키려 엿보는 의원도 있다”고 공화당에 직격탄을 날렸다.

그러나 공화당도 법안 상정을 계속 방해만 하기는 어려운 입장이다. 월가에 대한 여론이 악화돼서다. 이날 워싱턴 포스트(WP)와 ABC방송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7%가 월가에 대한 규제에 찬성했다. 더욱이 27일엔 미 상원의 금융위기 상설조사위원회가 증권거래위원회(SEC)로부터 사기 혐의로 제소된 골드먼삭스 경영진을 불러 청문회를 연다.

일각에선 공화당의 반대로 금융개혁법안이 표류하고 있는 상황을 민주당 지도부가 이용하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로덴버그 폴리티컬 리포트 편집자인 스투 로덴버그는 “민주당은 의회에서 공화당이 금융개혁법안에 계속 반대표를 던지도록 해 공화당이 월가 편이라는 인상을 유권자에게 심어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민주당으로선 ‘꽃놀이패’ 카드라는 것이다.

공화당으로선 협상을 통해 법안 일부를 수정한 뒤 이를 명분으로 표결에 동의하는 수순을 택할 것으로 보인다. 수정 대상으론 파생상품 규제가 가장 뜨거운 이슈다. 민주당은 파생상품을 거래하는 대형 금융회사가 관련 부서를 자회사로 떼어내도록 의무화했다. 더욱이 이를 신규 파생상품 계약뿐 아니라 기존 계약에도 소급 적용하도록 했다. 파생상품을 보유한 미국 대형 금융회사로선 자회사 신설에 엄청난 비용을 새로 부담해야 해 비상이 걸렸다. 이날 네브래스카주 넬슨 의원에게 워런 버핏이 반대표를 던지도록 로비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백악관은 이 조항 완화에 반대 입장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뉴욕=정경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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