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설명]“도시 옥상에서 자라려면 추위와 더위에 강해야 해요. 가지치기도 잘 해줘야 합니다.” 블루베리 나무들을 살펴보고 있는 도심 농부 주산근씨.
도시 한복판에 농부가 살고 있다. 병원과 상가·주택이 들어서 있는 영등포구 신림동의 한 건물 옥상에서 블루베리를 키우는 주산근(68)씨다. 주씨의 블루베리는 나무가 튼튼하고 열매의 알이 크다. 10년생 못지않게 무럭무럭 자란 6년생 블루베리는 주씨의 자랑거리다. 겨우내 움츠리고 있다가 이제 막 싹을 틔운 블루베리 묘목들 사이에서 농부의 손길이 분주하다.
신림동 상가 골목에 있는, 엘리베이터도 없는 5층 건물 옥상이다. 연두색 싹을 틔운 블루베리 묘목 2000주와 다 자란 나무 70주가 화분에 자리를 틀고 있는 블루베리 농장이다.
“아, 그 가지는 자르면 안돼요. 바싹 말랐나요? 큰 가지가 말랐나요?” 최근 묘목을 사간 사람의 문의 전화다. 묘목을 고르는 것부터 열매를 맺을 때까지, 식물을 키우는 일엔 손이 많이 간다. 이에 서툴수록 주씨를 찾는 일이 늘어난다. 그는 매일 100여 통의 전화를 받는다.
“얼마 전엔 베란다에서 키운다고 4년생 나무를 가져간 여자분이 나무에서 송충이가 나왔다고 놀라서 전화를 했더군요.” 이런 경우 송충이는 나무젓가락으로 살짝 잡아내면 된다.“친환경 나무라 생기는 일이라고 말씀 드렸죠. 그래도 송충이 때문에 겁을 먹고 있다니, 오늘 오후 송충이 잡으러 출동합니다.”
농장은 전화로 예약 후 방문하는 게 예사지만 간혹 무심코 들르는 이들도 있다. 여의도 지구대에 근무한다던 모 경장은 근처 순찰을 돌다 블루베리 간판을 보고 들렀단다. 옥상에서 블루베리를 어떻게 키우는지 궁금해 하며 묘목을 구입했던 그는 지금 경기도 안산에서 중견 농장주로 겸업 중이다.
주씨는 “블루베리를 옥상에서 키우는 일은 어렵지만 몇 가지만 주의하면 잘 자란다”고 말했다. “특히 화분에 키우기 때문에 관리가 쉽죠. 블루베리는 산성 흙에서 자라는데, 화분에 심으면 산성 성분이 적정 수준을 유지할 수 있죠.” 단점도 있다. 옥상이라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춥다. 여름엔 스프링쿨러로 열을 식혀주거나 햇빛 가리개로 차광을 한다.
추위와 더위에 강하게 하기 위해 그가 쓰는 또 다른 방법이 있다. 땅에 퇴비를 주지 않고 옆면 시비를 한다. 옆면 시비는 분무기로 뿌리듯 나무 줄기와 잎을 향해 효소를 뿌리는 일이다. “보세요, 잎이 용솟음치듯 하늘로 향해 있죠. 가지 역시 가냘프게 보여도 살짝 꺾어보면 힘 있게 휘어집니다.”
물론 하루 아침에 이룬 일은 아니다. 블루베리를 키운 지 6년째 접어들었지만 초기 2년 동안은 시행착오의 나날이었다. 블루베리는 겨울이면 겨울잠에 들어간다. 봄이 돼 기온이 섭씨 8도로 올라가면 다시 활동을 시작한다. “처음엔 말려 죽이기도 했고, 뿌리가 얼어 죽기도 했죠. 올봄엔 이상기온으로 꽃을 아직 안 피운 나무들도 있지만 지난 겨울 역시 잘 버텨냈어요.”
추위와 더위를 견디고 자란 블루베리는 열매가 열린 후에도 튼튼하다. 보통은 열매가 익고 4~5일 후면 자연 낙화한다. 때문에 인건비를 들여 열매가 익는 시기에 모두 수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주씨의 블루베리는 손으로 거두기 전에 낙화란 없다. 열매가 익은 후 한 달이 지나도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튼튼하다고 소문난 블루베리 키우는 법을 전수받으려고 알음알음 찾아오는 사람도 꽤 될 정도다.
주씨는 30년 전 당시 다니던 회사의 미국지점에서 우연히 먹은 블루베리가 인연이 돼 도심에 블루베리 농장을 차렸다. “일본에도 가고 미국도 가서 블루베리 재배법을 공부했죠.” 처음엔 노후에 산보나 하며 키워보려던 블루베리였지만 공부를 하다보니 여기까지 왔다.“식물을 키울 땐 어떤 면에서 대범해야 해요. 지난해 열매가 열린 가지는 올해 열매가 안 열리죠. 그런 가지는 과감하게 잘라 전체 균형을 맞춰줘야 해요. 블루베리 뿌리는 스스로 미생물을 만드는 성질이 있어 물만 줘도 잘 자라죠. 옥상이나 아파트 베란다에서도 잘 자랍니다.”
< 이세라 기자 slwitch@joongang.co.kr/ 사진=김경록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