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서 발 치료받는 캄보디아 소년 “이젠 의사 돼서 남 돕고 싶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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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상으로 양발을 다친 캄보디아의 캇 세이하가 최근 서울대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뒤 휠체어에 앉아 웃고 있다. [변선구 기자]

지난해 2월 캄보디아의 프레이카에 위치한 고아원에 할아버지와 아이가 찾아왔다. 이 고아원은 한국 구호단체인 보금자리가 운영하고 있다. 아이는 다섯 살 정도 돼 보였다. 팬티만 입고 있었고 맨발이었다. 발에는… 발가락이 없었다. 뭉개진 모양의 발은 바나나처럼 휘어 있었다. 아이는 뒤뚱뒤뚱 걷다 넘어졌다. 할아버지가 말했다.

“세 살 때 큰 화상을 입었어요. 7년간 치료를 못했습니다(아이는 5세가 아니라 10세였다). 애 엄마는 그때쯤 세상을 떠났고, 아빠는 집을 나갔어요. 할머니는 지난해 갔고. 요즘 건기여서 밥도 못 먹입니다.”

최만호 원장은 두말 않고 아이를 받았다. 캇 세이하(11)는 그렇게 한국인과 만났다. 최 원장은 “1달러를 외치며 구걸하는 많은 아이들이 있는데, 특히 장애를 가진 아이는 앵벌이의 조건을 다 갖춘 셈이다. 그렇게 방치할 순 없었다”고 말했다.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를 봤다면 눈을 빼앗긴 아이들을 기억할 것이다. 인신매매단은 아이들을 유인해 뜨거운 납을 눈에 붓는다. 구걸로 돈을 벌기에 가장 좋은 조건은 ‘장애를 가진 어린이’라는, 잔인한 현실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이것은 인도만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세이하는 고아원에서 처음으로 하루 세 끼를 먹었다. 학교도 갔다. 그곳에서는 매일 500레알(1.25달러)을 학교에 납입해야 한다. 세이하는 매일 아침 500레알을 들고 학교에 갔다. 빵을 8~9개 정도 살 수 있는 돈이었다. 세이하는 꿈을 갖기 시작했다. 운전을 배워 여행 가이드가 되고 싶었다. 가이드는 그곳 아이들이 최고로 치는 장래 희망이다. 문제는 발이었다.

그러나 기회는 찾아왔다. 지난해 10월 의료신문(사이언스MD뉴스)의 김영길 편집인이 고아원으로 의료봉사를 왔다. 그는 세이하를 병원에 데려가 X선 사진을 찍었다. 귀국한 뒤 평소 인연이 있던 서울대병원 성상철 원장을 찾았다. 성 원장은 “고칠 수 있으니 데려와 보자”고 했다. 세이하는 여권을 발급받기 위해 호적부터 만들어야 했다. ‘세이하’는 8월이란 뜻이지만, 급히 호적을 만들면서 생일은 4월 2일이 됐다.

지난달 16일 세이하는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눈이 많이 내렸다. 그림으로만 보던 눈. 대부분의 사람이 동네를 벗어나지 못하고 늙어 죽는다는 프레이카에서 태어난 세이하는 비행기를 타고 눈이 내리는 나라까지 왔다.

세이하는 서울대병원에서 두 차례 오른발 수술을 받았다. 수술 전 116㎜였던 발은 140㎜까지 자랐다. 화상으로 발가락뼈 대부분이 손상됐지만 일부 복원도 가능하다고 한다. 성 원장은 “아이의 치료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걸 찾겠다.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세이하는 몇 차례 수술을 더 받아야 한다. 완전한 발은 아니겠지만, 운전하고 뛸 수 있는 발은 가능할 것이다. 세이하는 수술 후 다른 꿈이 생겼다. “나도 누군가 돕고 싶어요. 의사가 되면 그렇게 할 수 있겠죠?” 네댓 살처럼 보이지만, 우리로 치면 5학년인 세이하는 어른스럽게 이야기했다.

글=강인식 기자
사진=변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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