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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계열사 의결권 제한 재고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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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정부는 자산규모 2조원 이상 기업집단 소속 금융.보험사가 보유하고 있는 계열사 주식에 대해 의결권 행사 범위를 현행 30%에서 15%로 단계적으로 축소하는 법안을 국회에 상정해 놓고 있다. 그러나 최근 SK㈜에 대해 소버린의 정관 변경을 위한 임시주총의 소집 요구, 삼성전자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삼성물산에 대해 외국인의 대량 주식 매집, 대한해운에 대한 외국인의 공격 가능성 등 국내 우량기업에 대한 경영권 위협이 증대되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의결권 제한 정책은 국내 기업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SK㈜의 경우 외국인 지분은 2003년 말 43.9%에서 최근 61.01%로 증가하고 있으나 우호지분은 자금 여력이 충분치 않아 오히려 줄어들었다. 이 외에도 국내 주요 기업의 외국인 지분율은 60%에 육박하고 있어 의결권을 제한할 것이 아니라 확대해야 할 형편이다. 특히 한국과 같이 의결권을 제한하는 국가는 없고 스웨덴.영국.미국 등 많은 국가에서는 차등의결권제를 도입해 경영권 방어의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또한 우리는 외환위기 이후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을 통해 기업집단 소속 금융회사가 합해 5% 이상 특정 회사의 주식을 지배 목적으로 소유하는 것을 제한하는 등 그 어느 나라보다 금융회사를 통한 기업 지배를 강하게 규제하고 있다. 외국에는 이러한 제한이 없기 때문에 한국 기업들은 이중으로 경영권 방어에 어려움을 겪는 역차별을 당하고 있다. 여기에다 한국 기업들은 출자총액 제한으로 자금이 있어도 타기업 출자를 원천적으로 봉쇄 당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외국인의 시가총액 비중이 42%를 넘어섰고 최근에 와서 외국인의 증권투자소득 대외 송금액이 급증하는 등 국부 유출이 확대되고 있는데 의결권 제한이나 출자총액제한 제도를 완화하는 것이 한국 기업의 주식 보유 비중을 높여 국부 유출 방지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경영권 위협으로까지 가지 않는다 하더라도 외국 자본은 고액 배당, 유상 감자, 자사주 매입 등으로 과도한 주주 이익을 추구하기 때문에 회사의 장기적 발전을 위한 연구개발(R&D) 투자나 종업원 교육에는 무관심한 편이다. 또한 그들은 특정 사외이사의 선임 요구, 사업 현황의 설명 요구, 심지어 본사의 미국 이전, 미국 증시의 상장 등도 제안하고 있다. 과도한 경영간섭으로 경영권이 불안해지고 경영 외적으로 신경쓸 일이 많아져 경영자원이 분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의결권을 제한하는 이유로 고객 돈으로 대주주의 지배권을 강화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보고 투자는 하지만 의결권을 행사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기본적으로 산업자본의 금융지배에 따른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고 산업자본과 금융 자본의 분리 원칙에 기초를 두고 있다. 그러나 주식회사에서의 의결권은 재산권이고 의결권 제한은 재산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시장경제의 기본원칙에 위배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외국에서는 적법하게 취득한 주식에 대해 의결권 제한 제도 같은 것이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 개인이 어느 보험회사의 보험 가입자면 그는 그 보험회사를 믿고 가입한 것이고 그가 낸 돈으로 적절한 투자를 해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단지 투자가 적절한가, 적절하지 않은가가 문제인데 이것은 시장에서 판단할 문제다. 만일 그 보험회사가 부적절한 투자를 한다면 그는 그 보험회사에 가입하지 않을 것이다. 정부는 또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금융기관에 대해 출자규제와 대출규제뿐 아니라 건전성 감독을 하고 있다. 이러한 규제와 감독하에서 시장이 판단하도록 해야지 과도하게 의결권 제한까지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한국 기업의 PER이 낮은 것은 지배구조 때문이고 순환출자는 지배구조를 나쁘게 하기 때문에 의결권 제한이 타당하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물론 과도한 순환 출자는 안정성을 해치고 투자목적이 아니고 지배목적일 경우에는 기업 가치를 하락시키기 때문에 지양돼야 하겠지만 안정성을 위협하지 않는 범위 내에 있고 투자가치가 있는 적절한 순환출자는 기업 가치에 긍적적인 영향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는 정부가 나서서 획일적으로 하기보다 금융기관이나 주식투자자의 판단에 기초한 시장에 맡겨두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또한 한국 기업의 PER이 낮은 것은 지배구조 때문만은 아니다. 예를 들어 인텔.도시바의 PER은 왜 삼성전자보다 높은가. 이것은 지배구조 외에 그들의 탄탄한 기술력과 경영력이 뒷받침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삼성은 경영성과는 좋지만 장기적 성과를 담보할 기술력과 경영력은 아직 세계적 기업에 비해서는 부족하다고 인식될지도 모르고 또 한국 증시의 규모가 작기 때문에 기업 가치와 상관없이 PER이 낮을 수도 있다. 아마 외국 자본이 빠져나간다면 삼성전자의 PER은 대폭 하락할 것이고, 삼성전자가 미국 증시에 상장되면 PER이 높아질 것이다. 이 외에도 과도한 정부 규제, 불투명한 정부 정책 및 반기업 정서 등이 주가를 낮게 만드는 요인이다.

의결권 제한은 외국인의 경영권 공격과 경영 간섭, 국부 유출 등을 고려하고 금융기관의 투자에 대한 판단은 시장에 맡긴다는 취지 하에 재고돼야 할 것이다.

노부호 서강대 교수경영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