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 방어에 연기금 활용" 정부 언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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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연기금을 우량기업의 적대적 인수.합병(M&A) 방어에 활용하는 것은 증시에 어떤 영향을 줄까.

노무현 대통령과 이헌재 경제부총리가 잇따라 연기금 활용론을 언급하면서 투자자들이 갖게 되는 관심사다. 시장에선 호재로 보는 견해가 우세하다. 경영권 방어를 돕기 위해서든, 투자 목적에서든 연기금의 주식매입은 주가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M&A가 제약받음으로써 외국인 투자자들이 불만을 가질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주식을 팔고 한국 증시를 떠나는 외국인은 별로 없을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메릴린치증권 서울지점 이원기 전무는 "정부 구상대로라면 한국 증시는 연기금 중심의 기관화 현상이 꾸준히 진행될 것"이라며 "우량주의 유통 물량이 이미 부족한 상황이어서 주가는 탄력적으로 오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포스코와 국민은행 같은 주식은 외국인들이 70%를 넘는 지분을 쥐고 있어 실제 유통되는 물량이 많지 않다.

외국의 사례를 봐도 연기금이 증시에 본격 참여한 뒤 주가는 장기 상승 흐름을 보인 바 있다. 미국의 경우 1980년대 연기금들이 주식 투자 비중을 본격적으로 늘리는 과정에서 우량주들이 증시의 장기 상승세를 이끌어냈다.

한투운용 권성철 사장은 "10년 이상 장기 보유하는 연기금의 투자 성격상 연기금의 주식투자는 기업 경영이나 주가에 큰 버팀목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권 사장은 연기금의 지배구조가 독립적이고 투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연기금이 정부 입김에 휘둘려서는 제 역할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유럽계 증권사의 한 임원은 "정부가 특정기업의 M&A를 막기 위해 연기금을 동원하는 방식이 되면 기업 지배구조 개선과 소액주주 권리 확대 등을 거스르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LG투자증권 박윤수 상무는 "일부 외국인들에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면서 "관건은 정부와 연기금이 그 기업에 간여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한편 연기금이 국내 기업의 적대적 M&A 방어에 도움을 준 사례는 올 봄 SK 경영권 분쟁에서 찾아볼 수 있다. 지난 3월 최태원 SK 회장 측과 소버린자산운용이 표 대결을 벌인 SK 주주총회에서 국민연금은 최 회장 측의 손을 들어줬다. 당시 국민연금 측은 기존 SK 경영진과 소버린 중 어느 쪽이 SK의 기업 가치 증대에 도움이 될지를 놓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이상렬.정효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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