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의 영화 낚시] '무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7면

'무사' 를 보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불편함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닐 테지만 어쨌거나 일단 이 영화에선 사람이 너무 많이 죽는다.

아, 정말이지 너무 많이 죽는다. 그런데도 그들이 왜 죽는지, 죽는다해도 그렇게 처참하게 죽을 필요가 있는지 나로서는 납득하기가 어려울 때가 많았다. 물론 인간사야 잔혹한 것이고 전쟁은 비정한 것이다.

고려 시대까지 갈 것도 없이 한국전쟁만 봐도 그렇다. 그게 현실이다. 문제는 그 '현실' 이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는 데 있다. 잔혹하고 비정한 살육장면을 보여준다고 인생의 잔혹함과 비정함이 자동적으로 필름 속에 담기는 게 아니다.

아무리 상업영화일지라도 좋은 영화 속엔 반드시 '인간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이 내장돼 있어야한다. '무사' 속엔 그 질문이 충분하지 않다. 멜로가 없다느니 중심이 분산되었느니 이야기가 산만하다느니 하는 지적은 지엽적이다. 이야기란 별 게 아니다.

이야기는 영화 속 인물들의 행동, 그것의 총체일 뿐이다. 따라서 인물들이 허약하면 그들의 행동은 비틀거리고 이야기는 종잡을 수 없게 되면서 주제는 허공에 떠버리는 것이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라는 그 질문을 '무사' 의 각 인물들에게 던져보자. 그들이 이 질문을 잘 견딜 수 있을까?

우선, 정우성이 연기한 노비 여솔. 그의 고향은 고려가 아니라 할리우드다. '나는 자유인이다' 를 읊조리는, 신기에 가까운 창술의 소유자인 동시에 명나라 공주가 홀딱 반할 만한 미남자인 그의 머릿속을 지배하는 이데올로기는 미국식 개인주의이며 그의 모델은 할리우드의 고독한 영웅들이다.

안성기가 열연한 진립, 그 인물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 지혜로운, 그러나 냉정한 노병은 돌연 감상적 휴머니즘에 빠져들어 우왕좌왕하다가 막판엔 지도력이 의심스러운 장군에게 지휘를 맡긴다. 과연 그가 원하는 건 뭘까?

결국 이 허약한 인물들은 죄없는 몽고군을 학살하는 데에만 열심이다. 이들은 자신들을 귀양길에서 해방시켜준 원나라 군대를 기습하여 몰살시키고는 그 죄로 쫓겨다닌다.

그러니 이들의 농성에는 동정심이 생기지 아니하고 살육에도 너그러운 미소를 보내주기 어렵다. 공주만 내어놓으면 되는 싸움에서 이들은 끝까지 공주를 지키겠노라며 칼과 창을 휘두른다.

그런데 여기까지 쓰다가 문득, 과연 이런 분석과 난도질이 이 영화에 어울리는가가 자못 의심스러워진다. 이상하게도 '무사' 에는 이런 입방아를 무색케 하는, 거칠고 질박한 그 무엇이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최선을 다한 인간들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그 어떤 것.

어쩌면 영화에는 이야기나 촬영, 기법을 넘어선 뭔가 있을지도 모르고 혹자는 그것을 '혼' 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충분치는 않으나 '무사' 에는 분명 그게 있다. '타고 남은 재가 기름이 된다' 던 시구가 '무사' 에도 유효하기를, 그저 바랄 뿐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