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표는 1982년 CJ제일제당에 입사해 빙그레(95년 입사)·아모레퍼시픽(98년)을 거쳐 2008년 9월 다시 CJ 계열의 TV·인터넷 쇼핑 업체인 CJ오쇼핑에 부사장으로 돌아왔다. 지난해에는 대표이사로 승진했다. 현재까지 28년을 마케팅 한 우물만 판 셈이다. ‘메로나’ 아이스크림과 ‘비트’ 세제, ‘설화수’ 화장품 등 숱한 인기 브랜드를 탄생시켰다. ‘마케팅의 귀재’란 소리를 듣는 데 대해 “고객의 생각이 무조건 옳다고 믿고 따르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다”며 웃었다. 그는 화장품 회사에 다닐 때 손수 머리 염색과 화장을 해 보면서 소비자 마음을 읽으려고 애썼다. 그때 꾸미는 솜씨가 늘어서인지 50대 중반치고는 차림새가 독특하다. 이마 위로 살짝 빗어 올린 머릿결 한 가닥은 노란색이고, 셔츠 소매에는 커프스 링크를 달았다.
‘현고이사’는 지난해 7월 그의 아이디어로 시작됐다. “애정 없는 고객은 불만도 없어요. 기업이 고객불만에 애정을 갖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습니다.” 3명의 현고이사는 석 달 임기다. 여기서 활동한 주부 김모(47)씨는 “홈쇼핑에 몰두하다 보니 못마땅한 점을 참지 못할 때가 많았다. 현고이사를 하면서 회사의 말 못 할 고충도 많다는 걸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현고이사를 어떻게 뽑나.
“고객 DB를 뒤져 연간 제안 건수가 10건 이상인 사람 중에서 뽑는다. 고객만족팀이 2주에 한 번씩 만나 의견을 경청한다. 나도 가끔 점심식사를 함께한다.”
-‘발상 뒤집기’를 강조하는데.
“소비재 마케팅의 핵심은 CJ의 슬로건이기도 한 ‘온리원’(Only-One) 정신이다. 나만의 무기를 만들려면 골치를 썩이는 고객의 독한 의견도 들어야 한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도 역발상 덕분에 성공했다.”
-현고이사의 효과는.
“불만이 직설적이고 구체적이다. ‘원피스 사이즈가 잘 안 맞는다’가 아니라 ‘가슴이 달라붙는데 허리는 펑퍼짐하다’는 식이다. 조직이 크면서 신경 쓰지 못한 세세한 잘못까지 캐낸다.”
-제안은 어느 정도 반영하나.
“9개월 동안 굵직한 것만 40여 건을 개선했다. ‘여성 속옷을 배송할 때 택배상자 겉 포장에 속옷 사이즈까지 표시돼 있어 민망하다’는 여성 고객의 지적에 따라 사이즈 표기를 삭제한 적도 있다.”
-향후 운영 계획은.
“불만 청취를 좀더 체계적으로 하겠다. 식품·패션·가전별로 현고이사 자문역을 한 명씩 뽑아 분야별로 자문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CJ오쇼핑은 장차 오프라인 시장 진출을 꿈꾼다. 고객에게 더 가깝게 다가가야 한다는 지적이 많아 오프라인 장터를 연내 시작할 생각이다.”
김기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