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읽기 BOOK] 석유 때문에 무너지는 미국, 그럼 한국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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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예고된 붕괴
드미트리
오를로프 지음
이희재 옮김, 궁리
286쪽, 1만3000원

역사상 모든 제국은 붕괴했다. 저 옛날 로마가 그랬고, 가까이는 제국전쟁의 한 축이었던 소련이 그랬다. 한데 이 빤한 법칙을 현존하는 제국에 대입하면 불협화음이 인다. 이를테면 현존하는 제국인 미국도 분명 붕괴의 법칙을 따를 터지만, 어느 누구도 이런 명백한 사실을 인지조차 못한 채 살아간다. 미 제국은 강했으며, 지금도 막강하며, 앞으로도 강력할 테니까.

이 책은 앞서 붕괴한 소련을 예로 들며 미국의 붕괴를 확신에 찬 목소리로 예고한다. 소련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소비에트 연방의 붕괴를 직접 목격했던 저자는 소련과 미국의 유사성을 하나씩 꼽아가며 그 주장에 힘을 싣는다.

초강대국의 붕괴 과정은 수프 만들기에 종종 비유된다. 각종 재료가 슬슬 가열돼 수프가 완성되듯, 제국이 무너지는 모양새도 비슷하다는 것이다. ▶원유 공급의 저하▶무역 수지의 적자▶치솟는 군사비▶불어나는 외채▶군사적 패배 등이 ‘붕괴 수프’의 재료다. 사회주의 체제가 무너지던 소련의 풍경과 최근 금융 위기를 겪고 있는 미국의 풍경이 겹쳐지는 대목이다.

미국 붕괴 시나리오의 핵심은 석유다. 미국은 세계 1위 원유 수입국이다. 식량조차 기업농에 의존하는 미국이 원유 부족으로 내몰릴 경우 미국 경제는 일시에 무너진다는 얘기다. 여기에다 임금을 쥐어짜는 미국식 자본주의는 대량 실업 사태를 불러와 미국 가정을 단번에 주저앉힐 거라 경고한다.

저자는 이 섬뜩한 이야기를 풍자를 곁들여 맛깔스럽게 풀어낸다. “붕괴를 똑바로 응시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기름이 부족해진 미국에선 쇼핑 카트가 교통 수단으로 등장할 거란 뼈있는 농담을 던지기도 한다.

문제는 미국에 의존하고 있는 무수한 나라들의 동시 붕괴 가능성이다. 한국은 그 가운데서도 으뜸이다. 대미 수출 의존도가 절대적인 데다가 국방 역시 상당 부분 기대고 있는 게 현실이다. 해서 책 머리엔 한국 독자를 위한 이런 충고가 올라있다. “한때 미국이었던 나라가 종적을 감추더라도 한반도는 미국의 붕괴를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재창조해야 한다.”

정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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