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은 항상 좋기만 한 것일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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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호 04면

별것 아닌 이야긴데 소소한 생각거리를 남기는 부류의 영화가 있다. ‘우리 의사선생님’이 딱 그런 경우다. 오사카의 한 시골마을에 단 한 명 있던 의사 이노(쇼후쿠테이 쓰루베)가 갑자기 사라지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형사들이 찾아오고 탐문수사가 시작된다. 초반에 보기엔 이 의사, 꽤 훌륭해 보인다. 초밥 먹다 피조개가 목에 걸려 절명하기 직전의 노인을 등 한 번 두드려 살려내는 ‘명의’인 데다, 혼자 사는 몸 불편한 노인을 위해 집집마다 찾아다닌다. 무의촌에 자원해 온 사람이라니 “하느님·부처님보다 더 든든하다”는 칭송을 듣게도 생겼다. 두 달 기한으로 도쿄에서 온 인턴 소마(에이타)는 그에게 감화되면서 환자와 몇 분도 대화를 나누지 않는 ‘도시형 진료’에 점점 회의를 느낀다.

영화 ‘우리 의사선생님’, 감독 니시카와 미와, 주연 쇼후쿠테이 쓰루베·에이타·요 기미코 등

영화는 이 의사의 ‘정체’가 밝혀지는 과정을 그렸다. 정체가 드러나는 걸 결정적 반전으로 삼지 않았기에 말해두자면 이 할아버지, 가짜 의사다. 의사 없는 깡촌에 약 팔러 왔다가 의사로 오인 받아 눌러앉게 된 거다. 사실 등골이 서늘해질 일이다. 대표적인 게 홀로 사는 도리카이 부인(야치구사 가오루)이다. 부인은 말기암을 앓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지만 이노는 위궤양을 앓고 있다고 둘러댄다. “자식들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는 부인의 간절한 소망을 외면하지 못해서다. 이노의 비밀은 도쿄 큰 병원 의사인 도리카이 부인의 막내딸이 내려오면서 비로소 만천하에 드러나게 된다.

‘유레루’(2006년)로 인간 심리 묘사에 일가견을 인정받았던 니시카와 미와 감독은 “진짜가 아닌 사람, 충동적이지만 운이 좋았고 이젠 돌이킬 수 없게 된 사람, 이 세상을 움직이고 있는 모든 가짜들에 대한 얘기”라고 이 영화를 소개한다. 그는 ‘거짓말=나쁜 것(혹은 범죄)’이라는 등식이 항상 성립하는 건지, 사람의 능력이 자격증으로만 판명되는 현실에 모순은 없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범죄의 재구성’과 추리는 이 잔잔해 보이는 영화를 은근하지만 쏠쏠한 재미로 이끈다. 마을 사람들, 간호사와 제약회사 직원 등 이노를 둘러싼 사람들은 다들 모종의 이해관계로 얽혀 있다. 그들을 지켜보며 관객은 ‘저 사람은 진실을 알았을까, 몰랐을까’ 혹은 ‘저 사람은 언제, 어떻게 알았을까’를 시종일관 궁금해 하게 된다.

퍼즐 조각 맞추듯 조용히 진실의 꼴을 만들어가는 가운데 진실이라고 해서 반드시 좋은 것인가 하는 예리한 질문을 잊지 않는 ‘외유내강형’ 영화다. 저예산 작가영화지만 올해 최우수각본상을 비롯해 일본 아카데미 10개 부문을 휩쓴 전적도 외유내강이라 할 만하다. 사람 참 좋아보이는 이노 역의 쇼후쿠테이 쓰루베는 일본의 유명 만담가 겸 코미디언이다. 29일 개봉. 서울 씨네코드 선재와 CGV상암, 경기도 성남시 CGV오리에서 상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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