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북·중관계 복원 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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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중국의 장쩌민(江澤民)국가주석이 2박3일간의 북한방문을 마치고 돌아갔다.

그의 방북은 시기적으로 미국 부시 행정부의 출범으로 남북관계가 소강상태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김정일의 중.러 방문과 북방 삼각협조체제가 재구축되고 있는 바탕 위에서 이뤄져 우리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장쩌민 방북단 최대 규모

이번 江주석의 방북은 1992년 한.중 수교와 김일성 사망으로 단절됐던 중.북한간 정상외교가 완전 회복됨과 동시에 양국관계가 한.중수교 이전의 상태로 복원돼 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한반도에 대한 중국의 정책이 탈이념.탈진영을 기조로 하는 독립자주적 원칙에 따라 결정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양국관계의 복원이 한.중수교 이전 상태로의 기계적 환원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따라서 지금 중.북한 간에 이뤄지고 있는 관계개선이나 발전은 국가이익과 상호주의에 입각한 정상적 관계로 재정립되는 계기로 나타날 것이다.

이번 江의 방북은 김정일의 방중 때처럼 주로 당 채널을 통해 이뤄졌고 방문단의 규모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 당.정.군 대표단으로는 최대 규모로 볼 수 있다.

중국측은 우선 이번 방문을 통해 북한과의 당대당 관계의 완전 복원과 한.중수교 이후 붕괴됐던 다양한 협력 채널들을 복원하는데 가장 우선순위를 두었고 이러한 면에서 구체적인 성과를 거두었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따라 중국은 앞으로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에 있어서 그들의 전략적 지위가 피동적 자세로 전락되는 것을 방지하고 한반도 문제의 해결에 있어서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는 유리한 입지를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江의 방북에서 중국 정부는 미 신정부 출범 이후 남북한간에 지속되고 있는 소강상태의 탈피를 위한 역할을 적극 모색했다.

중국 정부는 대미관계 개선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는 북한에 대해 남북간의 대화나 협력의 가시적 성과를 통해 북.미관계의 발전 조건을 구축해 가는 우회적 접근방식을 제기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는 江의 방북 직전 북한 조평통이 대남 대화재개를 전격 제의한 데서 잘 반영됐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이번 북측의 대화 제의는 江의 방북을 위한 중.북한 실무협상 과정에서 충분히 협의되고 합의된 결과로 볼 수 있으며 이러한 제의가 江의 방북 직전에 발표된 것은 양국 정상회담 후에 발표하는 것보다 북한측의 주체적 결정이라는 형식을 부각시키는 효과가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이번 江의 방북을 통해 김정일의 한국 답방을 비롯한 남북한 관계에 돌파구가 마련될 가능성이 크며, 만약 북한측이 김정일의 답방을 위한 한국의 국내 정치적 여건충족이 어렵다고 판단할 경우 다음달 상하이(上海) APEC 정상회의 참석을 통해 제2차 남북 정상회담이 실현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이번 江의 방북에서 가장 기대가 됐던 것은 북한의 개혁.개방에 대한 중국의 지원과 역할문제였다.

江이 자신의 이론 개발, 특히 '3개대표(三個代表)' 이론 개발에 핵심적 역할을 하고 있는 왕후닝 중앙정책연구실 부주임을 대동한 것은 개혁.개방이 체제붕괴로 연결될 것이라는 위기인식을 갖고 있는 북한측에 대해 사회주의체제에 대한 영향을 최소화하면서 고도 경제성장을 이룩해온 중국의 경험을 체계적으로 설명함으로써 개혁.개방에 대한 북한당국의 결단을 우회적으로 촉구했을 가능성이 크다.

***남북관계도 돌파구 기대

특히 이번 회담에서 사영기업인의 포용 등 공산당의 성격에 중대한 변화를 함축하고 있는 '3개대표' 이론에 대한 북한측의 지지를 이끌어낸 것은 중국 측으로서는 중요한 성과라 할 수 있다.

그것은 중국의 개혁노선에 대한 북한의 의구심을 해소할 뿐 아니라 북한의 개혁의지를 확인하는 것이며 특히 국내적으로 많은 저항에 직면하고 있는 동 이론의 합법성을 구축해 가는데 유리한 국내 정치적 조건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중국은 한국과 전면적 협력관계를 구축하면서 동시에 북한과의 관계도 전면 복원됨으로써 한반도 문제의 해결에 적극적이고 건설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조건과 영향력을 갖게 됐다. 앞으로 한반도 문제의 해결에 대한 중국의 순기능을 확보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경주해 가야 할 것이다.

朴斗福(외교안보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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