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고3교실 혼돈 막으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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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우리는 스스로를 '마루타' 라고 부릅니다. '입시제도 실험실' 에서 소리없이 죽어가는…. "

대입 연중 수시모집 실시 첫해의 교육현장을 점검한 '혼돈의 고3교실' 기사가 나간 뒤 한 고3 수험생이 기자에게 보낸 e-메일은 이렇게 시작됐다.

"수능시험이 코앞에 닥쳤는데 선생님들은 수시원서를 작성하느라 아예 수업시간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이번 주말부터 중간고사지만 시험범위도 정해지지 않았어요. "

연중 수시모집 실시, 특별전형 확대를 핵심으로 올해 도입된 새 입시제도의 목표는 '대입 전형방법.시기의 다양화를 통한 공교육 활성화' . 그러나 교육현장에서 벌어지는 혼선과 부작용은 너무 심각했다. 대입제도의 방향은 제대로 잡았지만 그에 걸맞은 교육 인프라가 조성되지 않았고, 그 결과 고등학교도 대학도 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제도 자체에 대한 불신도 컸다.

"과외 안받고 한 가지만 잘해도 대학 간다구요□ 하지만 '좋은 대학' 은 못가요. " (수험생 학부모)

"기회가 늘어났다지만 공부 잘하는 학생들 얘기예요. 제게 맞는 대학에 수시원서를 쓰려 해도 명문대에 지원하는 친구들 서류준비도 벅차다며 기회조차 주지 않아요. " (수험생)

"특기교육요? 수업도 제대로 진행할 여건이 안되는데 무슨 배부른 소립니까. 아직도 대학은 성적위주로 학생을 뽑잖아요. " (고3 담임교사)

"기본 미.적분도 못하는 학생들을 배출해 놓곤 대학들이 알아서 좋은 학생 뽑아가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세계 유수대학과 경쟁하라고 하니 이게 말이 됩니까. " (대학 입학처장)

얽히고설킨 불신의 고리를 끊고 '공(公)교육 붕괴' 를 막을 쾌도난마식의 처방은 어디에도 없다. 전문가들은 새 제도에 맞춰 일선고교의 입시지도를 전문화하고 심화학습 등 특성화 교육을 정착시켜야 한다고 충고한다.

대학에 대해서는 정시모집과 차별되는 선발 시스템을 정비해야 한다는 처방을 내놓고 있다. 당장의 혼란만을 놓고 새 제도를 평가하기엔 아직 이르다. 교육당국은 물론 대학과 고교.학부모 등이 과도기의 시행착오를 면밀히 분석해 새로운 제도를 정착시킬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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