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아우성…수출중기 73%, 기존 계약들 모두 적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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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 부품을 멕시코 등 중남미 지역에 수출하는 거성전자는 요즘 골머리를 앓고 있다.

최근 환율이 급락하자 해외거래선이 대금 결제를 며칠씩 늦추면서 수출단가를 10% 깎아달라는 요구까지 해왔기 때문이다. 이 회사는 원화를 기준으로 한 가격에 대해 달러로 수출대금을 결제받고 있다. 김재원 부장은 "적자 수출을 감수해야 해 단가를 깎아 줄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회사는 환율 하락이 계속될 경우 거래선이 중국으로 부품 공급선을 바꿀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이미 지난여름 거래선이 중국을 방문해 경쟁업체를 둘러봤다는 정보도 입수했다. 이에 따라 이 회사는 국내 가전업체와 납품 협상을 벌이는 등 내수시장을 뚫기 위한 대책을 수립 중이다.

섬유원단을 미주지역에 수출하는 시그마텍스타일도 환율 때문에 골치다. 회사 관계자는 "원래 달러당 30원의 환차익을 보는 것으로 계산해 수출계약을 해놨는데 요즘은 오히려 40원의 환차손을 보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계약해놓은 업체들과는 가격협상을 다시 할 수도 없어 출혈 수출을 해야 하는 처지다.

세화레더 오진석 사장은 요즘 한 달의 20일은 인도에서 보낸다. 원자재 공급원을 새로 찾기 위해서다. 이 회사는 그동안 국내 반월공단 등에서 가죽을 공급받아 가방이나 구두용 가죽원단으로 가공해 유럽이나 미국으로 수출해 왔다. 하지만 가죽 원자재 값을 국내업체들에 원화로 지급하고, 수출은 달러화로 하다 보니 환율 급락으로 도저히 채산성을 맞출 수 없게 됐다. 그래서 원자재를 해외에서 달러로 수입해 자동환율 헤징을 하겠다는 것이다. 오 사장은 "90%에 달하던 국내 원료 공급 비율을 내년까지 20%로 낮춰 원가경쟁력을 확보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중소 수출업체들이 환율 급락으로 울상을 짓고 있다. 무역협회가 지난 1~5일 수출기업 392곳을 대상으로 환율 급락 영향을 조사한 결과 환율이 달러당 1100원 내외일 경우 전체 중 8.3%만이 출혈 수출을 모면한다고 응답했다. 또 이미 수출한 물량이 적자에 직면했거나 적자로 전환했다는 응답이 73.2%에 달했다.

전체 응답기업 중 70.2%는 "채산성이 맞지 않아 신규 오더를 받는 것을 주저하고 있다"고 밝혔다. "수출 일부를 내수로 전환할 것을 모색 중"(10.2%)이거나 "이미 한 수출 계약을 채산성 악화로 취소했다"는 기업(7.5%)도 꽤 됐다.

무역협회 무역연구소 신승관 연구위원은 "환율 하락에도 불구하고 전체 중소 수출기업의 45.4%가 경쟁국가나 바이어와의 거래관계 때문에 수출 가격을 올릴 수 없다고 답했다"고 말했다. 신 위원은 "중소 수출기업 상당수가 원천기술이 없어 환율이 하락하면 채산성 악화가 불가피하다"고 덧붙였다.

최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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