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하게 … 괜찮은 남자도 차버리는 요즘 여자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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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30명의 여성들이 한 남성을 세워 놓고 저울질을 한다. 마음에 안 들면 단박에 아웃이다. 정글의 법칙이 넘실대는 ‘내 짝 찾기’ 프로그램 ‘러브 스위치’. 연애도 엄연한 시장경제다. [tvN 제공]

30명의 싱글녀들이 반원형으로 도열해 있는 스튜디오. 승강기에서 남자가 내리면 60개의 눈동자가 잽싸게 훑는다. 외모가 아니다 싶으면 램프 버튼 클릭. ‘킬’하겠단 뜻이다. 1단계에서 30개의 버튼이 모두 꺼지기도 한다. VCR을 통해 2차, 3차로 남자의 ‘스펙’과 장단점을 확인하며 최종 선택을 한다.

뻔뻔하다. 독하다. 그래도 리모컨은 고정된다. 케이블·위성채널 tvN의 ‘러브 스위치’(월 밤 11시, 이하 ‘스위치’)는 짝짓기 프로그램의 ‘남녀상열지사’에 서바이벌 리얼리티쇼를 버무렸다. 시청률은 순항이다. 방송 3회 만에 1%를 넘어섰고, 6회까지 동시간대 케이블 1위를 달린다. “신세대의 솔직한 가치관을 보여준다” “외모지상주의, 속물근성을 부추긴다”는 평가가 엇갈린다. 이 프로그램을 총괄하는 김현철 tvN 예능국장은 1994년 MBC ‘사랑의 스튜디오’(이하 ‘스튜디오’)를 기획한 PD 출신. 그 당시 맺어진 커플의 자녀가 이제는 ‘스위치’를 즐길 나이가 됐다. 우리 방송과 연애 세태도 그만큼 변했다. ‘스튜디오’를 돌아보며 ‘스위치’에 딴죽을 걸어봤다.

# 노예팅 아냐?=철저하게 ‘다수 여성 vs 남자 1인’의 구도다. 20대 초반부터 40대 초반까지 여성들에게 회당 적어도 3명의 남성이 차례대로 ‘공급’된다. 3단계까지 여성의 선택이 끝나면 이젠 남자의 몫. 누구를 선택할지, 혹은 아무도 선택하지 않을지 결정한다. 실제로 끝까지 남은 여성 후보들을 ‘올 킬’시켜 반격한 남자도 있다.

‘스튜디오’는 4대4 동수에서 반드시 한 명은 택해야 했다. “싫어도 노(No) 할 수 없는 구성”(김 국장)이었다. 상대 모르게 작대기로 호감을 표시하고, 서로 통해야 커플이 됐다. ‘스튜디오’가 좋은 사람을 골라가는 포지티브 방식이라면 ‘스위치’는 싫은 사람을 걸러내는 네거티브 방식이다. 도를 넘는 폭탄 발언도 서바이벌이라는 특성상 중화된다.

# 저 남자들 왜 나와?=“장시간 당구를 친다” “운동화에 깔창을 넣어 신는다”는 코멘트가 나오는 순간, 등화관제 하듯 램프가 줄줄이 꺼진다. “기생 오라비 같이 생겼다” “어깨가 너무 좁다” 등의 이유로도 탈락이다. ‘루저 발언’ 저리가라다. 실시간 ‘램프’ 장치가 시시각각 반응하는 여자 심리를 보여준다.

출연자는 수영강사·프로골퍼 등 다양하다. ‘스튜디오’가 소위 ‘사’자급 남자들 중심이었던 것과 비교된다. 맞선보단 헌팅 느낌이 강하다. 김 국장은 “이성을 만나는 기회가 클럽 등 일회적 장소가 보편화된 것과 무관치 않은 것 같다”고 했다. 남자들도 이상형을 똑 부러지게 요구하는 게 예전의 점잔 빼던 신사들과 달라진 점이다.

# 저 여자들 뭐야?=30명의 여자 출연진은 거의 고정이다. 커플로 맺어졌던 ‘6억 연봉녀’는 4주 만에 다시 돌아오기도 했다. 개성으로 무장한 전문직 여성들은 남자 고르기보다 자기 과시에 치중한다. ‘14차원 소녀’니 ‘압구정 여왕벌’이니 하는 캐릭터도 벌써 생겼다.

결국 쇼를 보는 재미는 ‘누가 누가 연결되나’가 아니라 ‘저 남자가 왜 싫다는 거지?’ 하는 심리 엿보기다. 품평하는 여자들을 품평하며, 내 취향과 비교한다. 연애 프로그램과 토크쇼를 섞은 구성이다. 프로그램의 원조는 세계 10여 개국에 포맷(프로그램 구성)이 수출된 프랑스 버라이어티쇼 ‘테이크 미 아웃’(Take Me Out)이다.

강혜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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