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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장엽 암살하고 투신자살하려 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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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김·동은 순수한 탈북자인 것처럼 위장하기 위해 공작금이나 무전기 등을 소지하지 않은 상태로 입국했다. 황장엽 전 비서를 암살하라는 지령을 완수하려면 무기와 활동자금은 물론 정부의 보호를 받고 있는 황 전 비서에 관한 정보를 입수해야만 한다. 국내 고정간첩 또는 친북단체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대중·노무현 정권 10년 동안 간첩을 붙잡은 적이 드물었기 때문에 국내에 암약하는 고정간첩이 이전보다 늘어났다는 게 공안당국의 추정이다. 황 전 비서는 남한 내부의 북한 고정간첩이 5만 명에 이른다고 주장한 바 있다. 김명호 등이 국내 친북단체와 연계를 시도했을 가능성도 있다. 일부 친북단체는 황장엽 전 비서에 대해 공공연하게 적개심을 드러내 왔다. 6·15 공동선언 실천연대의 김모씨는 황 전 비서에게 살해 협박 소포를 보낸 혐의 등으로 지난해 9월 징역 10월·자격정지 1년에 벌금 50만원 형이 확정됐다. 김 등은 자신들이 남파 공작원이라고 자백했지만 접선 대상에 대해선 함구하고 있다. 동은 “황 전 비서 암살에 성공하더라도 현장에서 투신자살하려 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공안당국은 이들이 북한에 남겨둔 가족을 걱정해 남한 내 접선 조직에 대해 자백하지 않는 것으로 보고 있다.

◆6년간 치밀한 남파 준비=조사 결과 김명호와 동명관은 2004년 12월 당시 정찰국 산하 대남공작 부서의 공작원으로 선발된 뒤 탈북자로 위장 잠입하기 위해 2006년부터 ‘신분 세탁’을 준비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과 국정원에 따르면 김명호는 2007년 담당 지도원으로부터 함흥시에 살다 사망한 ‘김명삼’이라는 인물로 위장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김은 김명삼의 학력·경력·가족관계 등에 대한 신원 사항을 외웠다.

동명관은 2006년 8월 ‘김명혁’으로 위장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는 김명혁의 주소지는 물론 직장(흥남제련소), 군 복무 부대(인민보안성 7총국 5여단 13대)를 직접 찾아가 김명혁의 전력을 확인하는 등 치밀하게 준비했다. 함경북도 무산에 있는 ‘무산광산’ 운수대 2중대 운전수로 위장 취업하고 지난해 5월 중국 창춘(長春)으로 건너갔다. 창춘 현지 운송업체에서 일하며 오랜 기간 신분을 세탁했다.

김·동은 북에서 전문적인 ‘킬러’ 훈련을 받았다. 이들은 92년부터 마동리 군사학교에서 사격과 무술을 배웠다. 맨손으로도 두세 명을 살해할 수 있을 정도로 고도의 암살 교육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은 97년 12월 서해 해상 침투조의 개척 조장을 맡아 북한 국기훈장 3급을 받았다. 이 때문에 20일 이들에 대한 법원 영장실질심사에서 국정원 소속 무술 요원과 법정 경위가 배치돼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도 했다. 이들은 남한 정착을 위해 자동차 정비 교육을 받았으며 남한에서 발간된 교재로 영어 회화 교육도 받았다. 국내 TV 드라마 3편을 보며 한국 물정을 배웠다. 두 사람은 지난해 11월 정찰총국장인 김영철 상장으로부터 직접 “황장엽의 목을 따라”는 지시를 받았다. 동은 당초 황 전 비서의 친척인 ‘황영명’(8·15 기계화군단 중대정치지도원 중위)으로 위장할 계획이었다. 황 전 비서에게 접근하기 쉬울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황영명이 배치된 군부대에 군사 기밀이 많아 군대 경력을 외우기 힘들다는 게 문제였다. 동은 기존에 숙지했던 김명혁의 신원에 성만 바꿔 ‘황명혁’으로 위장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이들의 위장은 2008년 검거된 여간첩 원정화(36) 사건 이후 강화된 국정원의 합동신문 과정에서 탄로가 났다. 급조한 위장 신분이다 보니 신원사항·학력·경력에 허점이 많았다. 다른 탈북자와 대질하는 과정에서 지역 특징 등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철재·홍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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