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 개혁 강박증 보이면 성공 못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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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역대 어느 정권을 막론하고 개혁이라는 명제를 들고 나오지 않은 적이 없다.

국민의 정부도 예외는 아니다. 그런데 이 정부가 개혁이라는 과제에 스스로 짓눌린 나머지 제때 적절히 정책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것 같다.

광복절 경축사에 드러난 대통령의 경제현실에 대한 인식도 개혁 강박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경제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구조조정의 가속화 등 경제개혁의 당위성만 강조함으로써 정부를 제외한 나머지 두 경제주체를 실망시켰다.

물론 요즘의 극심한 불황, 즉 수출과 내수 경기의 동반침체가 전적으로 정부의 정책 실패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경위야 어찌됐든 이런 성장 정체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기업의 투자의욕을 부추기는 게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본다.

재벌을 비롯한 기업들의 지난날 과오가 적지 않고 구조조정 등 개혁을 꾸준히 추진해야 할 필요성도 분명히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개혁의 나팔 불기를 잠시 중단해야 한다. 나팔을 아예 던져버리라는 게 아니다. 지금 기업들의 호흡이 거칠어지고 있는 데 눈길을 돌려 숨통을 터주라는 이야기다.

30대 집단을 10여개 군으로 축소시키거나 출자총액 제한을 경기가 풀릴 때까지 잠정적으로 미뤄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다고 해서 정부가 추진해온 개혁의 큰 줄기가 손상을 입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김덕중 <한국산업문화硏 소장 경원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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