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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보다 훨씬 큰데 요금은 더 싸’…서울에 등장한 첫 시내버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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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처음 등장한 경성부영버스와 여차장. 경성부는 부영버스 운행을 앞두고 12명의 여차장을 모집했는데, 75명이 지원했다. 그중 한국인이 73명이었고 여고보 출신도 2명이나 되었다. 한국인 여성 취업이 그만큼 어려웠던 실태를 반영한 것이지만 버스에 대한 ‘호감’도 작용했다. 그러나 버스의 인기가 급락하면서 ‘여차장’의 인기도 시들해졌다. (출처: 『자동차 70년사』)

1928년 4월 22일, 집채만 한 자동차가 서울 거리에 모습을 드러냈다. 경성부가 직접 운영하기 위해 일본에서 들여온 버스로, 14석의 좌석 외에 가죽 손잡이 8개가 달려 있어 모두 22명이 탈 수 있었다. 노선은 3개였으며, 요금은 구간당 7전, 운행 간격은 10분이었다. 버스를 처음 타본 사람들은 택시보다 훨씬 싼 요금으로 몇 배나 큰 차를, 그것도 묘령의 여차장과 함께 탈 수 있다는 데에 만족했고 찬탄을 늘어놓았다. 그러나 그때뿐이었다. 그 뒤 지금까지 80여 년간 시내버스는 언제나 도시민의 불평거리였다.

사람 관계는 보통 공간 척도로 표현된다. ‘사이좋다’ 할 때의 사이는 두 지점 간의 거리를 뜻한다. ‘친밀’이란 좁은 공간에 무릎을 맞대고 모여 있어야 오히려 유쾌한 관계를, ‘소원’이란 가급적 멀리 떨어져 있어야 편한 관계를 의미한다. 타인에 대한 심리적 거리와 물리적 거리는 확실한 비례 관계에 있다. 연인끼리는 혹여 둘 사이에 바람이라도 샐세라 바짝 붙어 다니지만, 모르는 사람이 가까운 거리를 유지하고 있으면 불안하고 불쾌한 법이다.

사람들은 맨살이 닿아도 어색하지 않은 가족들 사이에서 눈을 뜬다. 집을 나서면 평소 낯익은 이웃들과 마주친다. 그러나 큰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거의가 모르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일부러 가까이 다가서거나 인사를 건네면 미친 사람 취급을 받는다. 직장에 다 와서야 다시 아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이웃보다는 ‘가깝고’ 가족보다는 ‘먼’ 사람들에게 각각 합당하다고 생각되는 방식으로 인사를 건넨다. 집에서 직장에, 다시 직장에서 집으로 가는 길은 ‘아는’ 사람 사이에 있다가 ‘모르는’ 사람들 틈에 끼어들고, 다시 ‘아는’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는 과정이다. 집이나 직장 앞에서 느끼는 안도감은 건물이 주는 것이 아니라 그 건물 안에 있는 사람들이 주는 것이다.

그런데 대중교통 수단은 집에서 직장 사이의 심리적 거리를 단축시키는 데에 머물지 않고, 서로 모르는 사람들 사이의 물리적 거리마저 극단적으로 압축시킨다. 모르는 사람의 숨결이 목덜미에 닿고, 모르는 사람과 몸을 부딪는 일이 유쾌할 리 없다. 시내버스나 지하철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은 하루의 대략 5%에 해당하는 시간을, 비좁은 공간에서 모르는 사람과 밀착한 채 보낸다. 대중교통 수단 이용률을 높이기 위해 여러 정책이 시행 중이고 또 계획되고 있지만, 시간과 비용만 따져서는 두드러지는 성과를 내기 어려울 듯하다. 자가용 승용차로 출퇴근하는 사람들 대다수에게, 차 안은 ‘혼자만의 시간’을 누릴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다.

전우용 서울대병원 병원역사문화센터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