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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 살 때와 버릴 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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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얼마 안 있어 이사해야 합니다. 결혼한 지 5년, 이번으로 여섯번째 이사입니다. 도시도 아닌 시골에 살면서 웬 이사를 그리 자주 했을까 싶은데, 꼭 그럴 만한 사정이 따로 생겨 짐을 꾸리곤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큰 집에서도 살아보고 작은 집에서도 살아보고 멋있는 집에서도 살아보고 낡은 집에서도 살아보았습니다. 그동안 짐 싸고 푸느라 귀찮기도 했지만, 그 덕에 이사에 대한 생각이 좀 바뀌었습니다. 입맛에 맞춰 집을 고를 형편이 못되고 보니, 이사 갈 집의 좋고 나쁨에 마음을 쓰는 것이 아니라 우리 집 세간이 그 집에 들어갈 수 있느냐 없느냐에 더 마음을 쓰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이사 갈 집은 지금 사는 집보다 작습니다. 그런데 그동안 새 식구가 생겨 자잘한 살림이 더 늘었으니 짐을 알맞게 정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방법은 쉽습니다. 못 쓸 것은 버리고 안 쓸 것은 나눠주면 됩니다. 그런데 내 집에 물건 들어오기는 쉽더니 이것을 다시 내보내기는 쉽지 않습니다. 함부로 버리자니 언젠가는 꼭 쓸 일이 생길 것만 같고, 나눠주자니 받을 사람이 고맙게 잘 쓸까 미심쩍기도 합니다. 아니, 더 솔직히 말하면 그동안 버리는 일에 익숙하지 못했고 나누는 일에도 인색했기 때문에 짐을 정리하는 일이 골치 아프게 여겨지는 듯합니다.

그래서 '일 년 동안 쓰지 않은 것은 십 년을 두어도 쓰지 않을 테니 처분하라'는 어떤 이의 충고를 요즘에 자주 되뇝니다. 그리고 잘 입지 않는 옷이나 다 읽은 책을 여기저기 나누어 주면서 나름대로 실천하려 애쓰기도 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런 실천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더 큰 딜레마가 따로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집 안의 물건을 밖으로 내보는 데 골머리를 썩이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론 다시 새로운 물건을 집 안에 들이려는 마음이 사그라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양면 프라이팬을 사면 생선을 더 맛있게 먹을 수 있을 것 같고, 큼직한 냉장고를 사면 냉장고 정리가 깔끔하게 해결될 것 같고, 이불 먼지를 빨아들이는 새 청소기를 사면 온 집안이 먼지 없이 깨끗해질 것 같은 확신 아닌 확신에 사로잡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된 까닭에 대해 굳이 핑계를 대자면 못 댈 것도 없습니다. 눈 닿는 데마다 새 물건의 장점을 설명하는 광고가 즐비하다 보니 어느새 나같이 마음 약한 사람은 정말 그것만 사면 행복해질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 십상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묶어서 싸게 줄 테니 많이 사 놓고 쓰라는 상술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사은품이나 견본품을 공짜로 받아가라는 유혹도 쉽게 뿌리칠 수가 없습니다. 행여 원하는 물건이 우리 집에 들어오더라도 그로 인한 만족감이 시들해지는 데에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음을 매번 확인하면서도 말입니다.

그런 까닭에 얼마 전 찾아간 어떤 화가의 집은 나의 생활을 부끄럽게 만들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분의 집에는 없어도 되는 물건은 없고 있어야 하는 물건만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보통 사람들이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엄격하게 절제하며 사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필요하지 않은 것을 집 안에 들여놓지 않는 단순한 그 여유로움이 집안 전체를 숨쉬게 하고 있었습니다. 사람이 쓰려고 물건을 놓아둔 것이 아니라 물건 틈에 사람이 끼여 사는 형국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그래서인지 그 집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사람이었습니다.

한 환경단체에서 11월 28일을 '아무것도 사지 않는 날'로 정했다고 들었습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의미를 좀 넓혀서 11월을 '어떤 물건도 그냥 쌓아두지 않는 달'로 실천해 보려 합니다. 쓰지 않으면서 내 집 곳곳에 물건을 쌓아두는 것은 어쩌면 죄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지구촌의 누군가는 그 물건이 꼭 필요한데도 구할 수 없어 쩔쩔매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추둘란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