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금리 인하보다 더 중요한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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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서울과 워싱턴의 거리는 갈수록 멀어지는 것 같다. 이제까지 동조관계를 유지하던 경제마저 다른 방향으로 접어들고 있다. 두 나라 경제의 상반된 모습은 엊그제 단행된 금리정책에 그대로 반영돼 있다. 미국은 경기과열을 억제하기 위한 선제적 금리인상을 단행한 반면, 우리는 침체된 경제를 살리기 위해 마이너스 실질금리를 감수하면서까지 금리를 인하했다.

금리인상 대열에 끼여 있는 나라는 미국만이 아니다. 일본은 물론 유럽과 동남아 등 대부분의 경제가 호황을 만끽하고 있는데, 우리만 홀로 침체를 거듭하고 있다. 한 외국 대사는 한국이 세계에서 외톨이가 되고 있다고 했는데, 경제마저 한국의 주체성(?)을 명확히 드러내고 있는 것일까.

과연 이번 금리인하는 경제회복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을까? 이미 실질 금리는 마이너스 상태다. 0.25%포인트의 인하가 당국의 기대만큼 소비를 늘리고, 투자를 살릴 수 있을까? 전문가의 시각은 대부분 회의적이다. 투자가 부족한 원인이 높은 금리에 있지 않고, 소비가 부진한 이유도 비싼 이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현금이 많아도 이 땅에 투자하지 않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우리 사회의 흐름이 투자자의 마음을 편치 않게 만들기 때문이다. 가계소비도 마찬가지다. 이자가 아무리 낮아져도 일자리는 없고 부채만 많은 가계가 어떻게 소비를 늘릴 수 있겠는가. 물론 금리인하는 기업의 금융비용을 낮춰 환율 하락으로 악화된 수출기업의 채산성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일부에서 부동산 투기도 늘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신규투자를 촉진시키는 데는 극히 제한적인 효과밖에는 없을 것이다.

소비와 투자가 부진하니 다음으로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은 정부가 나서는 것이다. 그래서 재정을 확대하고, 연기금을 동원해 사회간접자본을 확충하고, 정보기술(IT) 분야의 중소기업 투자도 늘릴 모양이다. 논란은 많지만 침체된 경기를 살리기 위해 적극적인 정책을 내놓는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다. 그러나 재정으로 경기를 살리려면 엄청난 비용이 수반된다. 10조원을 쏟아 부어야 겨우 성장률을 1%포인트 정도 높일 수 있다. 그것도 경제논리보다 복지지향적 투자에 치중한다면, 큰 기대를 걸 수 없다.

이런 와중에 환율까지 떨어지니 수출기업마저 아우성이다. 그러나 사실은 이것도 경기침체에서 비롯된 현상이다. 해외경제의 호조로 수출은 늘었지만 국내투자의 위축으로 자본재 수입이 늘지 않아 흑자가 누적됐기 때문이다. 넘치는 달러가 약세로 반전되니, 환율은 내려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원화가치의 상승이 내수를 회복시킨다고 기대하기도 어렵다. 오히려 수출만 위축시키게 된다.

사면초가의 한국경제가 어떻게 회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까. 어려울수록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우선 침체의 원인이 해외요인이 아니고 내수부진에 있다면, 정부가 더욱 과감하게 나서야 한다. 우선 재정지출과 세금인하도 더욱 폭넓게 단행하고, 일관된 정책의지를 천명해야 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정부 혼자만으론 절대로 경제를 살릴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 땅을 떠나는 투자자의 마음을 돌려놓아야 한다. 시장지향적 성장정책과 과감한 규제 철폐로 민간부문의 투자를 유도하고, 내일에 대한 기대와 믿음을 심어줘야 한다. 더 이상 갈등과 사회적 분열을 초래하는 개혁논쟁에 집착하지 말고, 국력을 경제에 모아야 한다. 성장은 때로 부작용을 유발하지만, 침체는 오히려 결국 소외계층의 어려움만 가중시킬 따름이다. 경제는 정부가 기업과 가계의 마음을 움직여 아름다운 코러스를 만들어야 살아날 수 있다. 정부 혼자 외톨이처럼 아무리 외쳐대도 경제는 스스로 움직이지 않는다.

정갑영 연세대 정보대학원장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