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詩)가 있는 아침 ] - '물음표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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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김혜순(1955~ ), 「물음표 하나」전문

누군가 물음표에서 물음을
뽑아 버리고 있다.
닭털처럼 날리던 물음
바람에 몸을 맡긴 물음
발가벗기던 물음
온몸에 물감을 칠하던 물음
얼굴을 가린 물음
통곡하던 물음.

물음의 눈물. 눈물의 홍수. 물음의 무릎. 무릎을 당겨, 물음. 돌아누워, 물음. 좋아, 물음. 개같이 짖어 봐, 물음. 물음, 입 벌려. 물음의 침. 침의 홍수. 물음, 무릎을 조심하라니까. 물음을 물어뜯는 물음. 잠자지 마, 물음. 노래 해, 물음. 바람처럼 흩날려, 물음. 쉼표, 이리 들어와. 물음을 막아 서. 나가지 못하게 하란 말야, 쉼표. 물음, 물음, 제자리. 노래하는 물음. 마침표를 버린 물음. 물음만 남아서 외로운 물음. 꼬리로 만들어진 물음. 비 맞고 꼬리를 세우던 물음. 흩날리며 입술을 깨물던 그 불쌍한 물음.

꼬리를 잃은 마침표 하나
숨죽여 울고 있다.
이제 누군가 다가가
마침표 하나에
쓰러진 물음을 쑤셔박으려 하고 있다.



물음표는 귀처럼 생겼다. 귀를 기울이라는 뜻일까? 물음표에서 갈고리 모양을 떼어내면 마침표가 된다. 물음표에서 물음을 뽑아버리면 그 물음은 갈 곳이 없어 허공에서 닭털처럼 날리고 바람에 몸을 맡긴다. 발가벗겨지고, 통곡한다(물음이 곧 울음으로 발음될 것 같다). 물음표에서 물음이 뽑혀지던 시대를 얼마나 많은 말들이 지나왔던가? 물음표가 마침표가 되면, 말의 생명도 마치게 된다. 시는 그 마침표에 물음을 쑤셔넣는 일.

김기택<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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