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기자들이 쓴 독후감과 견학문] 김량희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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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민족작가로 불리는 조정래의 소설 『아리랑』. 열두권의 책에는 한.일 합방부터 광복까지 어려웠던 우리 민족의 삶이 생생하게 적혀 있다.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 가운데 1할도 안되는 지주들이 9할의 땅을 소유하고 9할의 소작농들을 거느리고 산다. 하루 끼니도 잇기 어려운 사람들과 입맛을 돋우기 위해 생선알젓을 반찬으로 먹는 사람들. 그들의 사이는 좁혀질 줄 모른다.

철도와 신작로가 생기고 사탕과 양복이 바다를 건너와도 대다수 사람들은 그것을 누릴 수 없다. 더 부자로 살기 위해 일본인에 기생하는 지주들이 있는가 하면 가난한 조선 청년들은 빚에 팔려 하와이섬의 사탕수수밭으로, 땅을 잃은 소작농은 만주로, 나물 캐러간 처녀들은 강제로 끌려 위안부로, 지식인은 독립을 위해 러시아로 뿔뿔이 흩어진다.

그래도 그들은 포기하지 않는다. 모진 고문도, 굶주림도 광복 앞에선 아무렇지 않았다. 이념이 달라도 사람들이 가는 길, 조국 광복의 그날은 같았다. 그리고 1945년 8월 15일 마침내 해방을 맞았다.

그로부터 56년이 지난 2001년 8월 15일. 라디오에선 일본 천황의 항복 대신 총리의 신사 참배 소식과 이를 규탄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역사 왜곡, 끊이지 않는 망언들….

우리의 모습은 어떤가. 입시에 지친 학생들, 구조조정에 내몰린 중.장년층, 도망치듯 이민을 떠나는 사람들….

우리와 일본 모두 현재 상황은 광복 전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가로수마다 태극기가 줄을 맞춰 늘어서 있지만 무관심한 사람들의 얼굴에서 56년 전 그날의 열기는 찾을 수 없다.

김량희(부산 금정여고 2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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