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관광의 해 외국인 불만 실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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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외국인 관광객들의 불평은 한국 공항에 발을 내디디면서부터 시작된다.

여름 휴가를 맞아 지난주 일본을 거쳐 한국에 왔다는 한 영국인 부부는 "입국심사 때 내국인 줄에 선 게 그렇게 큰 잘못이냐" 고 물었다. 족히 10분 이상을 기다려 차례가 됐는데 창구 직원이 턱으로 다른 줄을 가리키면서 "당신은 저쪽" 이라며 퉁명스레 핀잔을 주는 바람에 첫 인상부터 잡쳤다는 얘기다.

"특히 중국이나 동남아 관광객은 입국 때부터 범죄인 취급을 받고, 들어와서도 곳곳에서 손님 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해 나쁜 인상을 가지고 돌아가기 일쑤" 라는 게 한국관광공사 관계자의 지적이다.

외국인들의 공통적인 불평은 여전히 난폭한 택시에 쏟아진다.

"버스에 외국어 안내방송이 없고, 지하철은 노선이 너무 복잡하며, 택시는 자동차 경주를 하는 것처럼 무섭다. 서울 지리에 대해 아는 척을 하지 않으면 바가지요금을 내야한다. "

일본인 관광객 다쓰마가 관광불편신고센터에 접수시킨 내용이다. 이밖에 신고된 내용들을 보면 '한국 관광의 해' 라는 용어가 무색해지고 만다.

◇ 오는 관광객까지 내쫓는다=지난 7월 서울 시내 한 사설 박물관에 갔던 미국인 스티븐 백은 "전통 북을 건드렸다고 직원이 엿가위를 목에 들이밀고 화를 내는 바람에 어쩔줄 몰랐다" 며 치를 떨었다.

지방도시의 B급 관광호텔에 며칠 머물 예정이던 덴마크인 여행객 프레데릭 닐센은 "낮손님을 받아야 하니 낮에는 방을 비우고 짐을 치우라" 는 요구를 받았다고 신고했다. "관광객에게는 신경도 안쓰고 한 시간반 동안 휴대전화로 개인 통화를 한 여행가이드" "팁을 주지 않는다고 관광버스가 운행정지를 했다" 등의 내용도 포함돼 있다.

일본인 오노즈카는 "평소 한국인들에게서 '쪽발이' 라는 말을 누누이 들으면서도 참았는데, 최근엔 서울 을지로에 '바보 일본인' 이라는 플래카드까지 걸렸다" 며 "중국인들도 '짱개' '자장면' 이라고 불리는 것을 알면 한국에 오지 않을 것" 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인 여행객 제리 마틴은 "한국인 대부분이 친절하지만 관광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 중 가격을 속이거나 거스름돈을 주지 않는 사람이 더러 있고 항의하면 난폭해진다" 며 "이런 상황을 미국에 돌아가 관광안내책자와 친지들에게 꼭 알리겠다" 고 말했다.

◇ 효과없는 관광정책=건설교통부는 지난해 9월 택시에 외국어 명함 부착을 의무화했고, 외국인 관련 부당요금에는 과태료를 50% 가중부과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서울시에 신고된 94건 중 과태료를 부과받은 사례는 56건(60%)에 불과했다.

외국인이 택시 번호 식별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외국어 명함을 구비한 택시는 절반도 안되기 때문이다. 호텔.여행사 등 관광업계도 제재조치가 가벼운 경고나 직원 친절교육 통고 등에 그치고 있다.

문화관광부쪽은 19일 "관광불편 신고내용을 관할 부처나 자치단체에 넘겨도 관광에 대한 인식이 없어 성의를 갖고 처리하지 않는다" 고 불평했다. 반면 해당 부처와 자치단체들은 "최선을 다하고 있다" 고 반박했다.

성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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