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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의 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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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대통령께 전해 주시오. 일본이 하와이를 칠 겁니다. 당장 이번 주말이 될 수도 있소.” 1941년 12월 5일 미 국무부로 걸려온 전화 한 통. 그해 가을부터 이미 여러 차례 일본의 공격 조짐을 알려온 재미 한인 독립운동가 한길수였다. 이틀 뒤인 일요일 새벽, 그 말 그대로 진주만 공습이 감행됐다. 미군은 함선 10여 척과 비행기 188대, 군인 2400여 명을 잃는 최악의 참사를 당했다. 이처럼 숱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공습에 대비 못한 것과 관련해 “루스벨트 행정부가 참전의 명분을 얻고자 고의로 무시했다”는 음모론이 나오기도 했다(존 톨랜드, 『Infamy(오명)』).

그러나 미 정부가 내놓은 공식 조사 결과는 국가 정보 체계의 실패였다. 정보가 여러 기관에 분산돼 제대로 취합, 분석되지 못한 게 문제였단 것이다. 반면 전혀 다른 주장도 만만찮다. 이른바 사후확증 편향(hindsight bias)이란 거다. 일이 벌어지고 난 뒤 돌이켜보니 진주만 공습이 명백했던 듯하지만 사전에 이를 알아채긴 결코 쉽지 않았단 얘기다. 당시 미 당국엔 필리핀·파나마·동인도제도·미 서부해안 등을 공격 예상지로 거명한 첩보도 무더기로 쏟아지고 있었다.

9·11 테러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듬해 말 발표된 미 의회의 진상 조사 보고서는 정보 당국이 테러를 암시하는 신호들을 놓쳐버린 사례를 낱낱이 지적했다. 알카에다 요원 두 명이 미국에 입국한 사실을 중앙정보국(CIA)이 미리 알고도 손쓰지 않은 게 대표적이다. 연방수사국(FBI) 역시 오사마 빈 라덴이 부하들을 미국 민간 항공학교에 보내고 있단 보고가 올라왔는데도 별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미국은 사후에 보면 불 보듯 뻔했던 공습을 막아내지 못한 것이다.

천안함 사태를 놓고 국가 안보에 구멍이 뚫렸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사전에 이런저런 정보를 잘 간파했다면 비극을 피할 수 있었을 거라며 문책론도 나온다. 그러나 옛말에 열 사람이 한 도적을 못 막는다고 했다. 언제 어디서 날아올지 모르는 적의 공격을 예측하는 게 나중에 뒷말하는 것만큼 쉽진 않단 소리다. 우리보다 정보력도, 군사력도 앞서는 미국이 실패를 거듭한 이유다. 그러니 정신을 더욱 바짝 차리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군은 물론 온 국민이 안보 의식을 철통같이 다잡아야 한다. 그게 천안함 장병들의 희생을 헛되게 하지 않을 소중한 교훈이다.

신예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