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시평] 대외전략과 대북 전력지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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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반세기 전까지만 해도 프랑스와 독일의 역사는 냉전시대 남북한 대결 못지 않게 험했다. 1세기 동안 보불(普佛)전쟁, 제1, 2차 세계대전의 피비린내 나는 경험을 세 번씩이나 치렀다.

그런데 우리가 음미해볼 가치가 있는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그렇게 살벌한 긴장관계를 풀어나갔던 그들의 방식이다.

*** 경제가 남북경색 해법

피맺힌 원한을 군사적 대결로 끝장을 보겠다는 것이 아니라 경제통합을 통해 풀어나간 것이다. 독일과 프랑스 경제를, 더 나아가 이웃 나라들의 경제까지 하나로 묶어 나가면서 경제적인 번영뿐만 아니라 안보문제까지 해결한 것이다.

1950년 프랑스 외무장관 로베르 슈망은 유럽의 평화를 위해 석탄과 철강 분야에서의 공동시장을 추진할 것을 제안했다.

이듬해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가 출범했고 이것이 57년에는 로마조약 체결을 통해 유럽경제공동체로 확대됐다. 유럽은 이제 단일통화를 거쳐 정치적 통합까지 앞두고 있다. 경제로 정치문제를 푼 것이다.

우리도 이제는 남북한 문제를 바라보는 인식의 지평을 넓혀야 할 때다. 정치.군사와 경제를 따로 떼어놓고 보는 그동안의 고정관념이 아니라 남북경협을 장기적인 대외전략의 일환으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

특히 북한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주한미군 주둔으로 한반도에 안정적인 안보환경이 제공되고 있는 동안에 경제적 해법을 통해 남북관계의 질적 변화를 서두르는 것이 좋다.

북한은 지금 경제가 그런 대로 지탱됐던 80년대 말까지와는 달리 대외개방에의 강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으며 이는 경제적 해법이 한반도에서 성공할 확률을 상당히 높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역사적 기회는 자주 오지 않는다.

한편 이렇다 할 실질적인 지역협력체에 가입해 있지 않아 외로운 형편인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장기적 대외경제전략을 세워 추진해 나가야 할 입장이다.

그런데 지역협력은 두 가지 형태로 가능하다. 한 가지는 자유무역지대처럼 공식적인 제도적 장치를 추진하는 방법이다. 최근 우리 정부도 칠레 및 주변국들과 이러한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으나 여러 가지 정치적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공식적인 제도적 협력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비공식적 차원의 연성(軟性) 지역협력 정책이다. 85년 플라자 협정으로 일본 엔화의 가치가 급속히 절상하자 일본의 민간자본들이 물밀 듯이 동남아에 진출했다.

일본 정부는 엄청난 규모의 개발원조 기금을 이 지역에 쏟아 부어 일본 기업들의 진출과 수출 증대의 기초를 다졌다. 이는 결국 실질적인 일본 경제권의 형성으로 연결됐다.

우리의 대북 경제협력도 이같은 연성 지역협력이라는 대외경제전략 추진의 시발점이라는 차원에서 보아야 할 것이다.

경의선.경원선 연결과 개성공단 등으로 남북한 경제가 통합되면 이를 통해 중국의 동북 3성.몽골. 시베리아의 대륙경제와 일본.미국.동남아의 해양경제를 한반도를 중심으로 연결시키면서 묶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 비공식 지역협력 주효

이러한 거시적 맥락에서 볼 때 현재 남북한 관계에 장애요인이 되고 있는 대북 전력지원 문제를 좀 더 긍정적인 자세로 검토해야 할 것이다.

미국은 군사안보 문제의 단기적 해결이라는 양약 처방에만 급해 있으나, 우리 정부가 경제협력을 통한 중장기적 한방 처방의 중요함도 설득하고 전력문제에 대해 협조를 구해야 한다.

송전에서 파생될 수 있는 기술적 어려움도 극복할 길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우리 국민도 전력 문제를 근시안적 관점에서 '퍼주기' 라고 매도할 일은 아니다.

그러한 정도의 지원은 대외경제전략을 추진할 때 어느 나라나 다 하는 일이다. 85년 이후 일본은 동남아에 엄청난 규모의 공적원조를 제공했다.

우리도 노태우(盧泰愚)정부 때 소련과 수교하면서 30억달러씩이나 지원하지 않았던가. 왜 하필이면 장기적으로 안보에 도움되고 대외경제전략의 시발점이 되는 북한에 대해서만 비판적으로 보아야 하는가.

전력지원과 남북경협 문제를 좀 더 길게, 그리고 크게 보아야 할 때다.

尹永寬(서울대교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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