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논단] 미국이 푸틴과 해야 할 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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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보통 사람들이 대개 그렇듯이 미국인들은 국제적인 일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 특히 냉전이 끝난 뒤에는 더욱 그렇다.

그런데 최근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전구에 불이 들어오는 것 같은 일이 있었다. 미국과 러시아의 새로운 외교 관계에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달 22일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이탈리아 제노바에서의 주요8개국(G8)정상회담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개별 정상회담을 했을 때 국민들은 부시 대통령을 다시 평가했다.

이에 앞서 몇주 전에 그가 처음으로 푸틴 대통령을 만나고 나서 "푸틴 대통령의 영혼을 들여다봤으며 그의 정직성과 솔직성을 발견했다" 고 말하자 국민들은 그를 비웃거나 나라의 앞날을 걱정했다.

그런데 부시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을 두번째로 만나고나서 두 나라가 장차 미사일방어(MD)구축을 함께 하고 핵미사일 수를 줄이는 데 동의했다고 발표하자 국민들은 전과는 다른 반응을 보였다. 부시 대통령이 사람들에게 '러시아는 이제 미국의 적국이 아니다' 라는 메시지를 잘 전달한 것이었다.

10여년 전 아버지 부시 대통령 시절 냉전은 끝났다. 그리고 빌 클린턴 대통령이 집권했을 때는 이미 소련이라는 나라가 해체된 뒤였다. 그러나 클린턴 대통령은 미국과 멕시코의 외교관계를 진전시키고, 북아일랜드 갈등을 중재하고, 중동평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면서도 미국과 러시아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데는 별 힘을 기울이지 않았다.

물론 클린턴 대통령이 전적으로 잘못했다는 건 아니다. 그가 재임하던 시절에 러시아는 보리스 옐친이라는 변덕스러운 대통령 때문에 늘 뒤숭숭했다.

부시 대통령이 러시아와의 새로운 관계 정립을 시작하고 국민들에게 러시아가 더 이상 위협적인 국가가 아니라는 점을 일깨워준 것의 역사적 의미는 동서연구소의 '공동의 선을 향하여' 라는 보고서에 잘 담겨 있다.

생겨난 지 20년 된 사설 정책자문기관인 이 연구소는 전직 국방.안보분야 관리들과 데이비드 보렌(민주).존 덴포스(공화).앨런 심슨(공화)등 세명의 전 상원의원들에 의뢰해 이 보고서를 만들었다.

그들은 일단 러시아의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아직은 위태로운 상황이라고 인정했다.

그리고 "러시아에서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국민들에게 정확히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기본적인 민주주의 원칙.인권.시장경제.투명성을 보장하지 않는 나라와 외교관계를 전전시키는 것을 원하지는 않기 때문" 이라고 지적했다.

그 뒤 그들은 만약 러시아가 이러한 점에서 올바른 길로 가고 있으면 부시 대통령은 러시아가 더욱 변하도록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러시아와의 군축협상을 진전시켜 공격무기를 대폭 줄이고 러시아를 미사일방어의 연구.개발에 참여시키자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부시 대통령이 현재 추구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보고서는 또 미국과 러시아가 새로운 외교관계를 구축하는 것은 러시아가 세계무역기구(WTO)에 조속히 가입하고 유럽연합(EU)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에 동참하는 데도 도움을 주며 전세계적으로 테러와 핵확산을 방지하는 데도 효과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유화정책은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순간을 포착하지 못하면 역사적인 기회를 놓치는 수가 있다. 미국은 보다 폭넓고 적극적인 변화를 이끌어 내는 힘을 가진 나라다.

짐 호글랜드 <워싱턴 포스트 칼럼니스트>

정리=이상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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