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로 맛보는 해학 '오입쟁이 사기꾼…' 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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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고금소총』등에서 모티브를 따온 만화 『오입쟁이 사기꾼 그리고 수전노』는 유쾌한 읽을거리다.

여행가이기도 한 저자가 해외에서 이런 유의 이야기들을 꽤 모았지만 우리네 조상들 만한 해학과 반전(反轉)이 드물었다는 고백처럼 소재 자체부터가 구수하다.

그러나 60여편의 단편만화를 모은 이 책의 상품적 가치를 결정한 것은 '고인돌' 의 박수동과 비슷하면서도 또 다른 그림일게다. 여기에 50대 중반 저자가 숙성시킨 글솜씨가 그만이다. 말풍선 속의 글과 지문(地文)모두가 읽는 맛까지 돋운다.

"소쩍새 우는 밤 권참사의 안방마님이 남편의 품이 그리워 밤참을 들고 사랑채로 갔겄다. 웬걸 삼월이년이 권참사 허벅지를 주무르고 있지않은가!" 질펀한 만화 '삼월이의 잠자리 재간' 의 첫번째 컷의 지문이다.

"오밤중에 웬 종년을?" 하고 도끼눈을 뜨는 아내의 추궁에 권참사가 설레발을 친다.

"어린애 가지구 뭘…" . 하지만 이튿날 삼월이를 유심히 보니 가슴이 봉긋하고 엉덩이가 짝 벌어진 방년 16세다.

일은 다음부터다. 지문은 "한데 이년이 툭 하면 기어오른다" 고 설명한다. 물 심부름을 시켜도 툴툴거리는 판이라 방망이를 집을라치면 웬걸 행랑아범이 가로막고 나선다. 결국 내쫓기로 한 찰나 삼월이의 폭탄선언이 터진다.

"나으리 말씀이 음식 솜씨도 그렇고 잠자리 재간도 쇤네가 더 좋다고 그럽디다" . 털썩 주저앉는 안방마님의 모습 보소! 혹시나 해서 되묻는 마님에게 삼월이가 '고급정보' 를 귀띔했다. "아뇨. 행랑아범이 그럽디다"

싸려던 보따리를 베고 주저앉은 삼월이가 배시시 웃는 장면도 무릎이 쳐지지만, 백미는 그 다음이다. 마지막 컷의 대반전 말이다. 웬걸 안방마님이 잣죽을 끓여 삼월이에게 갖다바치지 않는가! 이때 나오는 지문의 설명은 두번 읽어야 한바탕 웃어제칠 수 있다.

"이 장면을 본 마당 쓸던 행랑아범은 불에 덴듯 뜨끔한 표정이다. 이제 권참사 집안의 돌아가는 꼴을 모르는 것은 누렁이 녀석 뿐이다" .

이토록 기막힌 스토리텔링이지만, 다소 어슷비슷한 얘기들이 반복되는 바람에 뒤로 가면서 '만화 버전 고금소총' 의 약발이 조금씩 떨어져 아쉽다.

이보다 더 구조적인 사안을 지적해야겠다. 우리 만화의 보편적 한계이기도 하고, 영화 등 영상 장르 전반에 걸친 문제이기도 하다. 장면 전환이 다이내믹하지 못하다는 약점 말이다. 앵글이 단조로워 그런 것이다.

사정이 그러하니 등장인물들의 표정묘사에 의존하는 지루함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조우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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