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전망대] 인민일보의 '곧은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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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중국 공산주의는 체제 내 모순을 두 가지로 나눈다.

하나는 적아모순(敵我矛盾)이다. 말 그대로 '사회체제 내 적대세력이 일으킨 체제위협 내지 체제전복성 범죄' 를 가리킨다. 국가전복죄.간첩죄 등 안보 관련 범죄는 물론 부정.부패나 형사범죄까지 이 범주에 포함된다.

또 하나는 '인민 내부 모순' 이다. '공산주의 교양으로 무장된 인민들' 이지만 간혹 사소하게 저지를 수 있는 잘못이나 실수를 의미한다. 중국 언론들에는 불문율이 있다. 절대 적아모순을 허가없이 보도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 불문율은 지금까지 철저하게 지켜져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변화가 오고 있다. 중앙의 통제에서 비교적 자유롭다는 광둥(廣東)성과 허난(河南)성이 특히 심했다.

이 때문에 그동안 관리의 부패를 집중 보도해온 광저우(廣州)내 남방주말(南方週末)은 지난 5월 치도곤을 맞았다. 경영진은 물론 총편집(편집국장)과 해당 보도를 주도한 부장.취재기자가 1개월 사이에 모두 교체된 것이다.

허난성의 여론선도지인 대하보(大河報)의 경우 지난달 부총편집이 해임되고 총편집은 공개자아비판을 명령받았으며 취재기자 전원은 '마르크스주의 신문관' 을 교육받아야 했다. 그 후로 중국 언론에는 다시 문혁(文革)시대의 어둠이 찾아왔다. 모두 숨을 죽였고, 정부 눈치만 봤다.

그런데 이번엔 중앙 관영지 인민일보(人民日報)가 일을 냈다. 산하 인터넷 사이트인 인민망(人民網)의 '인민평론' 난에 최근 '사고(事故)가 치적도 될 수 있다' 란 제목의 논평을 싣고 "지방 관리들은 대형 사고가 발생하면 사고에서 교훈을 찾을 생각은 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치적 쌓기에만 혈안이 되고 있다" 고 정면 비판했다.

중국에서 지난 한달 건물붕괴.탄광폭발 등 대형사고만 여섯건이 발생했으며 이 사고로 모두 2백35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관리들은 사고 후 현장지휘.부상자 위로 등 언론에 생색나는 일에만 나서고, 사고원인 분석.재발방지.책임자 처벌 등 정작 중요한 사고 본질 관리에는 소홀했다는 지적이다.

다른 언론들의 '적아모순 보도' 에 서둘러 재갈을 물린 시점에, 정부의 치부를 인민일보가 앞장서 들춰낸 이유는 무엇일까.

당 선전부의 한 관리는 지난 1일 홍콩 언론인을 만난 자리에서 "언론으로 영도인(지도자)을 감시하는 일이 필요했기 때문" 이라고 설명했다. 감추고 막아봐야 결국 상처만 곪아터진다는 정부 차원의 자각이 있었다는 얘기다.

이래저래 중국은 점점 무서워져만 간다.

진세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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