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시평] 미국 경제 어디로 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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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미국 경제에 불안한 먹구름이 드리워져 있다. 10년 이상 호황으로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팍스 아메리카나' 를 구가하던 10조달러의 경제가 갑자기 이상기류에 휩싸이고 있는 것이다.

최근 6개월 동안 사상 유례없이 매월 금리를 인하하며 공격적인 경기부양을 시도하고 있지만 아직도 햇살은 먹구름 속에 가려져 있기만 하다.

FRB(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인 그린스펀의 말 한마디에 그렇게 요동을 치던 세계증시마저 이제는 기다리다 지쳐버린 듯하다. 과연 미국경제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가?

경기예측은 마치 변덕스런 날씨를 예측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그래서 경제학자는 잘못된 기상예보에 불평하지 말라고 한다.

예측은 현재의 경제를 진단하는 것과는 다르다. 어떻게 수시로 변화하는 그 많은 요인을 정확하게 전망할 수 있겠는가. 단지 과거의 실증적 자료를 과학적으로 분석해 내일을 내다볼 따름이다. 따라서 새로운 현상이 등장하면 예측결과는 달라질 수밖에 없는 속성을 갖고 있다.

이런 이유로 미국 경제에 대한 의견도 분분하다. 이미 침체에 접어들었다는 주장에서부터, 멀지 않아 다시 과열을 우려해야 한다는 경고도 있다. 물론 대부분의 전문가는 미국경제가 침체의 벼랑으로 떨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본격적인 회복까지는 아직도 수개월을 더 기다려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는가? 정보통신(IT)기술과 세계화 등으로 경제의 구조적 속성이 달라졌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과거처럼 신속하게 정책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가설 역시 아직은 평가하기 어렵다. 과거에도 상당한 시간이 지난 후에 금리인하 효과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또한 지난해까지도 이자율의 위력은 대단했던 것이다.

실제로 FRB의 경제모형에 따르면 금리인하는 6~9개월 이후부터 효과가 나타난다. 1%포인트의 금리인하는 1년 후에 0.6%, 2년이 지나야 1.7%의 국내총생산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따라서 올 1월부터 실시된 정책이 햇살을 보려면 아직은 더 많은 인내심이 필요한 셈이다. 만약 경제의 속성이 변해 정책효과가 지연된다면 더욱 그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가와 달러가치의 '특이한' 움직임이 그린스펀을 더욱 초조하게 만들고 있다. 금리를 인하하면 금융비용이 절감되고, 증권시장이 달아올라야 한다.

또한 금리인하는 돈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이므로 당연히 달러가치도 떨어져야만 한다. 그래서 소비와 투자가 늘고, 수출도 증가시킬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6개월동안 2.75%포인트를 인하했음에도 불구하고 주가는 오히려 떨어졌고, 달러 가치는 반대로 상승한 결과를 가져왔다. 달러는 '강한 달러' 에 붙들려 있고, 주가는 최악의 기업실적에 발목이 잡혀 있는 셈이다. 지난 40여년 동안 증명됐던 명제가 현실화되지 않으면서 그린스펀 역시 취임 14년 만에 가장 큰 시련에 처해 있는 셈이다.

더 기다려야 하는가, 아니면 경제의 속성이 바뀐 것일까? 물론 두가지 가능성을 모두 배제할 수 없다. 오히려 정책효과가 점진적으로 모두 나타난다면 다시 과열을 우려해야 할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린스펀의 성급함이 경기순환을 인위적으로 왜곡시키고 있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상승하던 경기가 자율적으로 조정을 받을 수 있었던 지난해 하반기에 성급하게 금리를 인상해 현재의 하강을 심화시켰다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최근의 공격적인 금리인하도 멀지않아 과열의 악순환을 불러올 수 있는 셈이다.

일본과 유로 경제의 침체와 더불어 미국의 경제여건이 어려워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아직은 금융완화의 효과를 좀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또한 감세를 통한 경기진작도 기다리고 있다. 엊그제 8년 만에 가장 낮은 2분기의 성장률이 발표됐음에도 불구하고 현지의 표정은 아직 침체의 불안감이 역력하지 않은 것 같다. 먹구름이 가득 찼어도 햇살은 어딘가에 숨어 있는 것 아니겠는가.

미국 코넬대에서 鄭甲泳(연세대 교수·경제학, 동서문제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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