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지식인 지도 제5부] '공동체주의'의 두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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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공동체에 대한 저항을 통해 자신의 권리와 자유를 쟁취하였던 개인이 이제 점차 자신의 존재를 회의하고 있다.

개인을 공동체의 이념에 종속시키려던 다양한 실험적 시도들이 남긴 상처가 아직 완전히 치유되지도 않았는데 사회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는 개인에 대한 문화적 반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파시즘.나치즘.공산주의와 같은 전체주의는 개인을 사회라는 거대한 바퀴의 단순한 톱니로 전락시키려 하였지만 이 실험적 이념들은 오히려 개인의 승리를 더욱 빛나게 만드는 희미한 배경으로, 역사의 기억 속으로 사라져가고 있지 않은가?

오늘날 개인은 절대적이다. 집단과 공동체는 항상 억압의 의혹을 불러일으키지만 우리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에는 아무런 물음표를 붙이지 않는다. 이제까지 사회질서의 기본으로 여겨졌던 '가족' 을 제치고 사회의 기본단위로 부상한 '개인' 은 그 자체가 '자유' , 그리고 '권리' 와 동일시된다.

우리의 삶과 가치를 구성하는 공동체로부터 개인들이 해방될 때 우리는 비로소 자유와 권리를 가질 수 있다는 신념이 만연하고 있다. 우리가 사회적 맥락에서 경험하는 자유주의의 현상은 두말할 나위 없이 개인화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자유주의와 개인주의는 분명 동전의 양면을 이루고 있다.

공동체주의는 이러한 개인의 절대화로 인해 개인의 삶이 오히려 황폐해질 수 있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모든 것을 스스로 해야 한다는 자율에 대한 사회적 압박이 우울증.정신질환.행동장애와 같은 사회.심리적 병리현상들을 야기한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우리를 억압하는 집단에 대한 불안이 감소할수록 공동체로부터 소외된 개인의 내면화된 불안은 오히려 증가한다.

어디 그뿐인가. 개인주의가 공익(公益)을 희생시켜서라도 자신의 사적 이익을 관철시키려는 천박한 이기주의로 변질될 때, 개인의 권리를 절대화하는 자유주의는 공동체의 근본토대인 시민들의 상호신뢰를 심각하게 침식한다. 자기자신 이외에는 어느 누구도 믿지 않는 개인은 공동체에서 분리된 원자에 지나지 않는다.

*** 동전의 양면인 자유와 방종

이러한 인식은 자유주의에 대한 공동체주의적 비판을 선도하고 있는 알래스데어 매킨타이어와 찰스 테일러의 철학적 전제조건이다.

이들의 철학적 동기와 의도를 올바로 이해하려면 우리는 개인에 대한 반란이 자유주의가 정점에 도달한 개인주의 사회에서 발생하였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자유주의의 이념이 그 극단까지 철저하게 실현된 곳에서만 그 한계와 문제점이 드러나는 것은 아닐까? 공동체주의는 사회주의적 이념이 여전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대륙의 철학적 산물이 아니라 자유주의 전통이 강한 미국의 철학이라는 사실이 이 점을 잘 말해준다. 그러므로 공동체주의는 자유주의에 대한 대안이라기보다는 보완이라고 할 수 있다.

*** 개개인 정체성 토대는 사회

공동체주의의 두 축은 매킨타이어와 테일러의 이름으로 대변된다. 자신을 공동체로부터 소외시키지 않고 오히려 공동체 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획득할 수 있는 시민은 '어떤 인격인가' , 개인을 억압하는 대신 공동선(共同善)을 통해 정의로운 사회질서를 보장하는 유대관계는 '어떤 공동체인가' . 전자가 정체성을 집중적으로 탐구하는 테일러의 핵심문제라고 한다면 후자는 공동체에 대한 개인의 공적을 정의의 토대로 삼는 매킨타이어의 철학적 화두다.

테일러에 의하면 개인은 결코 공동체에서 분리된 원자가 아니다. 원자는 자신이 스스로 선택한 개인적 가치에 묶여 있는, 즉 '자기 자신의 마음 속에 갇혀있는 개인들' 을 의미한다. 이러한 개인들은 자기실현의 물질적 수단이 충분히 공급되는 한 자신의 사생활을 즐기지 결코 공동체의 문제에 관여하려 하지 않는다.

만약 개인들이 선거와 같은 형식적 민주주의에 만족하고 자신의 가치와 이익에만 관심을 기울인다면, 현대 자유주의는 시민의 능동적 정치참여를 봉쇄한다는 점에서 '부드러운 전제정치' 를 가능하게 한다고 테일러는 경고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선 개인의 정체성이 공동체를 통해서만 구성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설령 현대사회의 다양한 가치들을 인정한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무엇이 실제로 더 중요하고, 어떤 가치가 공동체에 더 커다란 의미를 갖는가에 관한 공동의 관심과 이해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들의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가치를 전제할 때에만 개인은 공동체에서 분리되지 않고 자신의 정체성을 확보할 수 있다.

매킨타이어 역시 개인에게 삶의 의미를 부여하고 정의로울 수 있는 공동체에 관심을 기울인다. 그에 의하면 내가 형제이고, 사촌이고, 이런 저런 공동체의 구성원이라는 사실은 결코 '진정한 자아' 를 발견하기 위하여 제거되어야 할 우연적 특성이 아니다. 공동체가 개인의 인격을 구성하는 핵심적 요소라면 사회정의 역시 공동체에 대한 개인의 공적과 기여를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유주의자는 수단만 정당하다면 '내가 벌어서 내가 쓰는 것' 이 정의롭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공동체주의자는 내가 벌 수 있는 조건을 제공한 공동체, 즉 다른 사람들을 배려할 때에만 정의롭다고 주장한다. 무엇이 정당한가를 판단할 수 있는 근본가치는 항상 공동체 속에서 역사적으로 형성되기 때문이다.

공동체는 분명 우리의 개인적 이상과 가치를 자유롭게 실현할 수 있는 사회적 토대다. 만약 개인의 절대화로 인해 우리의 공동체가 붕괴한다면개인의 정체성을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는 도덕적 진공지대가 발생한다. 개인이 자신의 삶을 자유롭게 영위하기 위해 도덕적 질서로서의 공동체를 유지해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 공동체에 이로운게 곧 정의

그러나 상호 유대관계를 맺고자 하는 개인들은 여전히 자신의 인격적 차이를 철저하게 인지하는 자유주의적 개인들이다. 자유로운 개인들의 공동체는 어떻게 가능한가 다른 사람에 대한 차이의 인정을 무관심한 차별화로 변질시키지 않는 민주적 다원주의는 과연 가능한가 자기반란을 통해 새로운 공동체를 모색하는 개인들이 이 질문을 던지는 한, 공동체주의는 현대사상의 주요한 흐름이 될 것이다.

이진우 계명대 교수 ·철학

*** 알래스데어 매킨타이어

<약력>

▶1929년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출생.

▶49년 런던대 퀸 매리 컬리지 졸업(고전학).

▶51년 맨체스터대에서 철학박사 학위 받음.

▶70년 미국으로 이주하기 전 옥스퍼드.에섹스대 등에서 강의.

▶82~88년 밴더빌트대 철학과 석좌교수.

▶89~94년 노터데임대 철학과 석좌교수.

▶95~현재 듀크대 철학과 교수.

<관련 번역서>

▶덕의 상실(이진우 옮김, 문예출판사, 1997년).

<미번역서>

▶누구의 정의이고, 어떤 합리성인가□ (88년).

▶도덕적 탐구의 세가지 경쟁적 입장(90년).

*** 찰스 테일러

<약력>

▶1931년 캐나다 출생.

▶52년 캐나다 맥길대 졸업(역사학).

▶55년 영국 옥스퍼드대 졸업(정치학·철학·경제학).

▶60·61년 옥스퍼드대 철학석사와 박사 학위 받음.

▶현재 맥길대 철학과 교수.

<관련 번역서>

▶헤겔철학과 현대의 위기(박찬국 옮김,서광사,1988년).

▶불안한 현대사회(송영배 옮김,이학사,2001년).

<미번역서>

▶자아의 원천(89년).

▶본래성의 윤리(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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