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한 집 두 문패' 위원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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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갑생 정책기획부 기자

"뻔히 기능이 겹친다는 걸 알지만 특별법이 통과됐으니 만들지 않을 수도 없고…."

9일 국무조정실의 한 고위 공무원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실업 관련 대책을 담당하고 있다. 그가 하소연한 사연은 이랬다.

정부는 지난 2월 노사정 협약에 따라 한달 뒤 '일자리 만들기 위원회'를 만들었다. 실업 문제 해소에 노사정이 힘을 합치자는 취지였다. 청년실업 대책에 가장 무게를 뒀고 위원장은 총리가 맡았다.

지금까지 이 위원회는 회의를 두차례 했고 공공 부문 일자리 30여만개 창출 등 주로 청년실업 해소 방안을 마련, 발표했다.

지난 6월 뜻하지 않은 변수가 생겼다. 국회에서 3년 한시법으로 '청년실업 해소를 위한 특별법'이 통과된 것이다. 야당인 한나라당이 강력히 주장하고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이에 합의해 만들어진 법이었다. 청년 실업자가 중소기업에 쉽게 취직할 수 있도록 고용장려금.주택 지원 등의 방안이 담겨 있었다. 그러면서 대통령 직속으로 청년실업해소특위도 만들도록 규정했다. 게다가 이 위원회의 공동위원장을 총리와 민간인 대표가 맡도록 했다. 일자리 만들기 위원회와 성격.기능이 거의 같고 위원장도 겹치는 사실상의 '쌍둥이' 위원회가 만들어진 것이다.

국무조정실은 궁리 끝에 위원회는 두개로 하되 운영은 통합하기로 내부 방침을 세웠다. 총리실 관계자는 "기능이 대부분 중복돼 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씁쓸히 말했다. 한가지 일을 하는 사무실에 두개의 문패가 내걸리게 된 것이다. 한 행정 전문가는 "정치권이 무슨 일을 추진할 때마다 무조건 위원회를 만드는 전시행정적 발상이 빚은 촌극"이라고 평했다.

정부 역시 특별법의 특위가 이미 가동 중인 위원회와 기능이 중복되는 문제점을 미리 알아 국회에 다른 방안을 제시했어야 했다.결국 '한 집 두 문패'위원회는 국회의 구태의연한 발상에다 이를 미리 막지 못한 정부의 태만이 부른 기형 조직이 됐다.

강갑생 정책기획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