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재킷은 아내 것’ 미켈슨 마스터스 드라마에 사랑의 마침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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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성 속 미켈슨 타이거 우즈의 복귀로 떠들썩했던 마스터스가 ‘만년 2인자’ 필 미켈슨의 우승으로 막을 내렸다. 미켈슨이 18번 홀에서 3타차 우승을 확정 짓는 2m 버디 퍼트가 홀로 떨어지자 양팔을 치켜들어 환호하고 있다. [오거스타 AP=연합뉴스]

12일(한국시간) 마스터스 최종 라운드가 열린 오거스타 내셔널 18번 홀 그린.

필 미켈슨(미국)이 2m 버디 퍼팅을 남겨 놓고 있었다. 2위 리 웨스트우드(잉글랜드)에게 2타 차로 앞서고 있어 미켈슨의 우승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한 여인이 가슴을 졸이며 지켜보고 있었다. 바로 유방암 투병 중인 미켈슨의 아내 에이미였다. 에이미는 지난해 5월 유방암을 선고받은 뒤 11개월 만에 처음 코스에 나와 남편을 응원했다. 미켈슨은 투병 중인 아내에게 버디 퍼팅을 성공시키며 우승을 선사했다. 경기를 마친 뒤 미켈슨은 아내와 뜨겁고 긴 포옹을 나눴다. 이들은 눈물의 키스를 나누며 서로의 사랑을 재확인했다. 이어 미켈슨은 아이들과도 우승의 기쁨을 함께 나눴다. 이들 곁에는 지난해 7월 며느리와 똑같이 유방암에 걸린 미켈슨의 어머니 메리가 자리했다. 그 역시 자랑스러운 아들의 모습에 눈물을 흘렸다. 갤러리는 이들 가족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마치 한편의 휴먼 가족 드라마를 보는 듯했다.

왼쪽부터 그린재킷을 걸치며 활짝 웃는 필 미켈슨. 눈물을 글썽이는 아내를 위로하는 남편 미켈슨.

마스터스 출전 최고의 성적을 거둔 양용은(왼쪽·공동 8위)과 앤서니 김(단독 3위).

미켈슨은 이날 5타를 줄이며 합계 16언더파로 통산 세 번째 그린재킷을 입었다. 메이저 대회 승수도 4승으로 늘렸다. 144일 만에 필드에 복귀한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미국)는 4라운드 내내 함께 플레이를 펼쳤던 ‘탱크’ 최경주(40)와 함께 공동 4위(11언더파)를 차지했다. 이날 7타를 줄인 ‘라이언 킹’ 앤서니 김(25)이 3위(12언더파)에 올랐다.

미켈슨의 아내 사랑은 잇따라 터진 불륜 스캔들로 곤욕을 치른 우즈와 비교되면서 더욱 돋보였다. 우즈의 아내 엘린 노르데그렌은 끝내 경기장을 찾지 않았다. PGA투어의 골프 칼럼니스트 헬렌 로스는 “가족의 사랑이 마스터스 우승을 만들어냈다. 미켈슨에게 이번 우승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보도했다.

미켈슨의 가족 사랑은 유명하다. 투어 중에는 가능하면 가족과 함께 다닌다. 특히 아내에 대한 사랑은 각별하다. 에이미는 NBA 피닉스 선스 치어리더 출신으로 1992년 미켈슨이 애리조나 주립대 4학년 때 만나 4년간의 열애 끝에 결혼했다. 애처가로 유명한 미켈슨은 99년 US오픈 당시 첫 아이 출산이 예상되자 “양수가 터지면 곧바로 대회를 포기하고 병원으로 달려가겠다”며 비퍼를 차고 대회에 나서기도 했다. 지난해 5월 미켈슨은 아내가 유방암에 걸렸다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을 듣자 곧바로 투어 중단을 선언했다. 미켈슨은 지난해에도 아내의 수술 때문에 브리티시오픈에 결장하는 등 가족의 고통을 함께 나눴다.

미켈슨의 모자 왼쪽에는 항상 분홍색 리본이 새겨져 있다. 유방암 예방캠페인을 상징하는 리본을 모자에 새긴 것이다. 미켈슨은 유방암 치료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다.

미켈슨은 이번 대회 전까지 부진했다. 올 시즌 7개 대회에 출전, 공동 8위에 오른 것이 최고 성적이다. 세계랭킹도 3위로 밀려났다. 주위에서는 ‘영원한 2인자의 한계’라는 소리까지 나왔다. 하지만 미켈슨의 뒤에는 사랑스러운 가족이 버티고 있었다.

이번 대회는 미켈슨에게 ‘최고의 남편’은 물론 ‘최고의 골퍼’임을 입증하는 무대였다.

문승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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