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놀라운 경제지표들 … 경제 체질 개선할 호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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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깜짝깜짝 놀랄 정도의 각종 경제지표들이 꼬리를 물고 있다. 1~2월의 반도체 설비투자는 전년 동기 대비 무려 576%나 늘었다. 1분기 반도체 수출은 국제 시황이 풀리면서 전년 동기보다 3배나 증가했고, 자동차 부품 수출도 두 배 이상 늘었다. LCD와 석유화학 제품도 수출 물량을 제때 대지 못할 만큼 호황이다. 하향 안정세를 보이는 원화 환율이 무색할 정도다. 세계 경제가 기대 이상의 회복세를 보이면서 수출 위주의 한국 경제가 제대로 상승 기류를 타고 있는 것이다.

이에 힘입어 한국은행이 어제 올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4.6%에서 5.2%로 끌어올렸다. 대부분의 경제예측기관들이 5% 이상의 성장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다음달쯤 올 경제성장률을 6%까지 상향 조정할 움직임이고, 외국계 금융회사들은 6%대 이상의 성장을 점치고 있다. 지난해 제로 성장에서 허덕이던 한국 경제가 글로벌 경제위기 이전 수준으로 완전히 회복한 것이다.

일부에선 지난해의 기저효과로 인한 착시(錯視)현상이라고 경계하고, 일부는 지난해 성장률이 워낙 낮았던 만큼 4%대의 잠재성장률을 웃돌아도 결코 과열이 아니라는 시각이다. 그러나 한국 경제의 복원력을 더 이상 의심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지난해 마이너스 9%로 뒷걸음쳤던 설비투자는 올해 13.4% 증가할 전망이다. 일자리가 24만 개 늘어나면서 민간소비도 4%가량 늘어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반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대 중반에 머물 전망이다. 정부 지출로 간신히 버텨온 경제가 올 들어 민간부문이 활력을 되찾으면서 자생적인 회복세를 타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그리스 경제위기, 중국 위안화 문제 등 안팎의 경제상황을 여전히 낙관할 수는 없다. 원화가치가 오르고 국제 원자재 가격도 심상치 않다. 그러나 이제는 차분히 중간점검에 나설 필요가 있다. 경제 체력이 완연히 회복하면 시장에 수습 신호를 보내는 게 당연하다. 우선 경제위기 때 단행한 각종 비상조치들은 제때 거둬들여야 할 것이다. 늦추면 늦출수록 인플레와 자산버블 등의 부작용이 커질 수밖에 없다. 그동안 미뤄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과 한계기업 구조조정에도 속도를 올릴 필요가 있다.

어느 때보다 정책당국의 현명한 대응이 요구된다. 출구전략의 적절한 시점을 찾는 데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민간부문이 활기를 띠면서 자생적인 성장은 어느 정도 가시권에 들어왔다. 이제는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루는 쪽으로 정책 목표를 바꿀 때다. 그동안 구호만 난무한 녹색성장에 본격적으로 착수하고, 기업들은 기술·품질 등 비가격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쪽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 그래야 일자리가 늘고 민간 소비가 증가하는, 우리 경제의 선순환을 기대할 수 있다. 경제 위기에 대처하는 것보다 경제 구조와 체질을 전환시키는 게 훨씬 어렵고 까다롭다. 그러나 한국 경제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려면 피할 수 없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