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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션 피플] '물허벅' 빚는 신창현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5면

우리나라 여인들은 물동이를 대개 머리에 이고 다닌다.하지만 제주여성들은 물동이를 등에 진다.이 물동이 이름이 ‘허벅’.

그 ‘허벅’이 이젠 제주에서도 여간해서 찾아보기 어렵다.

제주도 남제주군 대정읍 제주도예원에서 허벅을 빚는 신창현(申昌鉉 ·62)씨는 30년 넘게 허벅에 쓰이는 질흙과 함께 살아왔다.

그의 고향은 도내 60여곳의 가마터 가운데 40여곳이 몰려있는 대정읍.15세 어린 나이에 자연스럽게 소일거리로 허벅빚기를 접할 수 있었던 셈이다.

申씨의 숙부는 제주에서 알아주는 허벅 장인(匠人)이었다.

“어릴 적에는 농사가 잘 되지 않기도 했지만 가마터에서 일하면 그래도 쌀밥은 먹었죠-.”

그러나 80년대 이후에 플라스틱 그릇이 넘쳐나고 양은 양동이가 인기를 끌면서 그는 가마터보다 밭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졌다.

‘제주옹기의 산실’로 불리던 대정마을에서조차 허벅 등의 토기를 빚는 일은 잊혀져가는 기술이 돼 갔다.가마터도 하나둘씩 사라졌다.

5년전인 1996년초 대정마을에 제주전통도예원이 생기면서 그는 다시 흙만지는 일을 시작했다.초빙스승이 된 것이다.

제주옹기의 맥을 잇겠다고 나선 6명의 젊은이들에게 그는 요즘 제주질그릇 제작기법을 전수하느라 여념이 없다.

하루 종일 그의 발끝에서는 물레가 돌고,뭉텅이 흙판이 그의 손길을 거치면 허벅이나 항아리로 변한다.그의 문하생들은 감탄을 하면서 스승의 솜씨를 배우겠다며 뜨거운 불가마 곁에서 꿈쩍도 하지 않는다.

도예원 강창언(姜彰彦·42)대표는 “찾는 이가 없어 별로 돈이 되지는 않지만 옛 제조기법을 고수해 온 申선생님의 재능이 제자들에게 이어져 다행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허벅같은 제주 질그릇은 유약을 바르지 않는 것이 특이합니다.과학적인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찰지고 단단한 화산토로 제작한 항아리나 허벅을 보고 사람들은 ‘바이오 토기’라고 하더군요.”

제주도 문화재위원회는 이달 말 그를 허벅장(匠)지방무형문화재로 지정할 예정이다.

제주=양성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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