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위석 칼럼] 구멍 커지는 나룻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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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한 사람의 일생도 한 세대(世代)도 해협의 이 편에서 저 편으로 가는 단 한 차례의 바다 건너기와 같은 것일까. 이 도해(渡海) 프로젝트에서 하드웨어인 나룻배 역할은 아무래도 경제가 맡고 있다.

마르크스 철학은 그래서 경제를 근본(basis)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가야금 산조를 듣는 곳도, 부시의 미사일방어 계획, 일본 역사 교과서를 시비하는 곳도 다 이 나룻배 위다.

우리나라 경제에는 세 가지의 원죄적 위험(불확실성)이 있다. 신흥개방경제형 달러 불안, 글로벌화 격차, 저생산성 덫이 그것이다.

세계의 보편적인 달러 불안은 미국 경제의 누적된 경상수지 적자 탓으로 미국 밖에 쌓인 엄청난 달러 잔고 때문에 생긴다. 달러는 차라리 세계 모든 경제가 그 위에 떠서 항해하는 바다이고 달러 불안은 바로 이 바다의 불안이다. 온 세계는 바다로부터 덕도 보지만 무서운 해도 입는다.

그 가운데서 신흥개방경제에 들어간 달러는 부도위험과 환율위험에 항상 안절부절 못하면서 과민반응에 고도로 노출돼 있다. 환율의 등락, 달러 자금의 조석(潮汐)이 수시로 변한다. 럭비공이 그렇듯 그 방향을 예측할 수 없다. 썰물 때가 되면 단기대출은 물론 장기채권이나 주식도 순식간에 도망간다. 달러가 오르면 국내수요가 타격을 받고 내리면 수출이 타격을 받는다. 신흥개방경제는 선진경제나 저개발경제와는 달리 별나게 더 짜고 풍랑과 조수가 더 변덕스러운 달러의 바다를 건너는 나룻배인 것이다.

나머지 두 가지 위험은 한국 경제라는 나룻배에 운명적으로 뚫려 있는 구멍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구멍은 장차 언젠가 새 배로 개비할 때까지는 메워가며 항해할 수밖에 없다.

그 중에 글로벌화 격차는 글로벌화된 미래가 아직 글로벌화되지 못한 현재를 공격해 파괴케 한다. 예컨대 1997년 통화위기 때까지 원화는 고평가와 사실상의 이중환율을 고수해 왔다. 이중환율은 수입 관세, 수출에 대한 내국세 우대와 수출금융에 대한 금리 우대 등으로 위장돼 있었다. 그래서 수출품은 싸게 팔고 국내시장에는 비싸게 팔 수 있었다.

세계무역기구(WTO)체제는 이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여기에 저생산성과 신흥개방경제형 달러 불안이 합세했다. 거대한 경상적자가 발생했고 국내 외환시장은 달러 썰물에 들어갔다. 이것이 97년의 통화위기였다. 글로벌화는 이중환율 따위를 허용하지 않는다. 세계 모든 경제가 자유시장 규칙 아래 단일화되는 것이 글로벌화다.

개혁은 국내시장의 규칙을 글로벌 스탠더드와 균질되게 하는 것이라야 한다. 그런데 여기에 대한 여러 종류의 반동이 다른 한편에서 글로벌화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의 반동은 특이하다. 의료개혁.교육개혁.금융개혁.언론개혁은 일부는 관료주의의 음모에 의해, 일부는 사회주의적 전시효과를 위해 반시장적으로 흐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추진하고 있는 이런 개혁들은 세계적 관점에서 보면 글로벌화 격차를 더 넓혀가는 반개혁이다. 개혁과 반개혁은 이데올로기의 불빛에 비춰보지 않고는 그 차이를 식별해 낼 수 없다. 이 점에서 지금 색깔 논쟁은 필수적이다.

저생산성 덫은 기업의 경쟁력을 열악하게 한다. 저생산성의 원인은 생산요소와 그 결합의 비효율에 있다.

글로벌시대.정보화시대의 가장 중요한 생산요소는 지식.제도, 그밖의 인프라구조다. 교육기관과 정부는 오히려 지식격차.제도격차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생산성 향상을 그들의 일이 아닌 것으로 여기고 있다.

"자네, 평등을 아는가. " 나룻배를 타고 가던 겉똑똑이 나리가 사공에게 물었다. "모릅니다. " 사공이 대답했다. "자네 인생은 30%가 결손돼 있군. 그렇다면 개혁은 아는가. " "모릅니다. " "그렇다면 자네 인생은 합쳐서 60%가 결손돼 있군. " 이 때 사공이 황급하게 말한다. "나리, 지금 이 배에는 물이 펑펑 새어들고 있습니다. 왜 구멍을 건드려 크게 하고 있습니까. 헤엄은 칠 줄 아십니까. "

강위석 `emerge새천년`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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